미국 상원이 10일(현지시간) 북한과의 거래를 도운 제3국 개인과 단체까지 제재할 수 있도록 한 대북제재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지난 6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후 1주일도 안 돼 신속하게 처리한 것으로, 그동안 미 의회를 통과한 대북제재법안 중 가장 포괄적이고 강력하다는 평가다.

미 상원은 이날 96명의 의원(총원 1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체회의를 열고 찬성 96표, 반대 0표로 대북제재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지난달 13일 하원에서 통과된 법안(H.R.757)을 확대·수정한 것으로, 이달 말께 하원의 재의결을 거치면 곧바로 행정부로 이관돼 시행에 들어간다.
[파국 치닫는 개성공단] 미국, 북한과 거래한 개인·기업까지 제재…광물 수출도 제한
이 법안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 사이버 공격 능력 향상, 지도층 사치품 구입 등에 외화를 사용할 수 없도록 자금줄을 원천 차단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이를 위해 거래 당사자인 북한과 상대국은 물론 거래를 도운 제3국의 개인과 단체까지 제재할 수 있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조항을 포함시켰다. 단체에 외국 정부는 포함되지 않지만, 정부의 산하기관이나 국영기업 등은 포함된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제3국 관련자의 행위가 정상적인 행위라 할지라도 북한을 도왔다는 사실만으로 제재를 받게 된다”며 “다만 제재 여부가 의무적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미 정부의 재량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미국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판단되는 소니 해킹 사건이 발생하자 지난해 1월 행정명령 ‘13687호’를 통해 처음으로 구체적인 불법행위가 없어도 북한 정부 및 노동당 관리들과 산하 단체·기관을 포괄적 제재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했다.
< 서부전선으로 이동하는 군사작전 차량 >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한 11일 오후 우리 군용차량들이 경기 파주 자유로 일대에서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북한의 조치에 맞서 우리 군도 서부전선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서부전선으로 이동하는 군사작전 차량 >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한 11일 오후 우리 군용차량들이 경기 파주 자유로 일대에서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북한의 조치에 맞서 우리 군도 서부전선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원은 대북제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이번 제재법안에 2005년 북한 정권에 타격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 ‘방코델타아시아(BDA)’식 제재방안을 포함시켰다. 미 재무부는 당시 애국법에 근거해 BDA를 돈세탁 우려대상으로 지정하고 북한 관련 계좌 50개를 동결했다.

동결 금액은 250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이후 전 세계 금융회사가 모두 북한과의 거래를 끊으면서 북한 정권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원은 북한제재법안의 최종 입법과정이 완료된 뒤 180일 이내에 미 재무부로 하여금 북한을 돈세탁 우려 국가로 지정할지 여부를 검토해 의회에 보고토록 했다.

상원은 이 밖에 하원 제재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광물 거래 제재조항도 새로 포함시켰다. 핵 개발 등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특정 광물의 북한으로의 판매와 거래, 이전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이 밖에 사이버공간에서 미국의 국가안보를 침해하거나 북한 인권유린 행위에 가담한 개인과 단체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넣었다.

인권유린 및 검열과 관련해선 미 국무부에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보고서를 의회 관련 위원회에 제출토록 하고, UN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 검토와 더불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책임을 상세히 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코리 가드너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은 표결에 앞선 발언을 통해 “한국 정부가 남북협력의 상징으로 운영해 온 개성공단의 가동 중단을 결정할 정도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북한 김정은 정권은 자신들의 무모한 도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소식통은 “미 의회에서 연중 발의되는 8000여건의 법안 중 상·하원을 최종 통과하는 것은 300건이 채 안되고 그나마 평균 처리일수가 4~8개월에 달한다”며 “대북제재법안은 지난 1월12일 하원 본회의를 통과한 지 한 달 만에 상원까지 초고속으로 통과한 것만 봐도 미 정치권에서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경각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은 2005년 BDA사건 이후 국제 금융제재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책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제재 법안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북한의 후원국인 중국이 제재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