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사라지지 않는 '케인스 미신'
TV 드라마 ‘장영실’에서 유성우(별똥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은 유성우가 하늘에서 떨어지면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길 것으로 보고 불안해했다. 장영실은 이와 달리 “유성우는 변고의 징조가 아니라 매해 같은 때 일어나는 천문현상입니다. 유성우가 정해진 날 내리는 걸 여러 해 동안 지켜보며 기록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유성우가 떨어지는 것을 나라에 변고가 생길 것으로 보는 것은 한마디로 미신(迷信)이라는 것이다.

케인스는 그의 저서 《일반이론》에서 ‘피라미드 건설, 지진, 심지어 전쟁까지도 부(富)를 확대하는 데 공헌했다’고 썼다. 그의 논리는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피라미드를 건설해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것이고, 지진이나 전쟁 이후 건설이 많아져 일자리가 증가하므로 경제를 호황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프레데릭 바스티아는 ‘깨진 유리창’ 이야기를 통해 케인스의 논리는 한마디로 미신임을 지적했다. 한 가게의 유리창이 사고로 깨졌다면 유리업자에게는 일이 생겨 좋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리업자에게 지급한 돈은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깨진 유리창은 부를 확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를 파괴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 건설이 아닌 다른 일을 할 자유가 있었다면 그들의 생활은 더 풍요로웠을 것이고 지진이나 전쟁 복구에 쓰일 자원이 다른 것에 쓰여 다른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케인스의 말이 진실이라면 경제 활성화와 부의 확대를 위해서 정부가 구멍을 파고 다시 메우는 것과 같은 일자리를 계속 마련하면 된다. 그리고 천재지변과 전쟁이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해야 할 것이다. 이 얼마나 난센스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미신은 사라지지 않고 뻔뻔스럽게 횡행하고 있다. 케인스의 충실한 신도인 폴 크루그먼은 미국에서 2001년 9·11 사태가 났을 때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9·11 공격이 경제를 위해서는 좋은 것이었다고 썼을 정도다. 크루그먼뿐만 아니다. 케인스의 미신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 널려 있다. 그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를 살리겠다며 케인스의 미신에 따라 분주했다. 정부가 경제를 주도하며 금리를 거의 제로(0) 수준으로 낮추고 그것도 모자라 양적 완화를 통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었으며 엄청난 재정을 투입했다. 그런데 세계 경제는 여전히 냉랭하다.

침체했던 경제가 정상화됐다고 판단해 작년에 금리를 올렸던 미국도 그리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미국의 지난해 12월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0.1% 감소해 6년 만에 가장 부진했고 산업생산도 0.4% 감소해 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역시 여전히 재정위기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베노믹스로 경제가 살아날 것처럼 보이던 일본도 경제가 다시 침체 기미를 보이자 최근 마이너스 금리를 전격 도입했다. 중국 경제의 둔화는 세계 경제를 더욱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한국 경제 역시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잠재성장률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7년이 지났다. 여전히 경제가 살아나고 있지 않다면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그런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케인스의 미신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각국은 재정지출을 늘리고 금리를 경쟁적으로 인하하며 양적 완화 정책을 확대할 궁리만 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호황기간에 일어난 잘못된 투자를 청산하라는 신호였다. 그런 만큼 문제 해결 방향은 구조조정이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고 저금리로 돈을 풀고 잘못된 투자를 구제해 왔다. 그리하여 부가 창출되기보다 부가 파괴돼 왔다. 세계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케인스의 미신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jwan@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