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MD앤더슨 암센터 백혈병 전문의가 IBM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왓슨을 적용한 시스템을 이용해 환자 기록을 살펴보고 있다. 한국IBM 제공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백혈병 전문의가 IBM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왓슨을 적용한 시스템을 이용해 환자 기록을 살펴보고 있다. 한국IBM 제공
세계 최고의 암센터로 꼽히는 메모리얼슬론케터링과 MD앤더슨에는 전문의와 함께 암 환자를 돌보는 컴퓨터가 있다. IBM 인공지능(AI) 슈퍼컴퓨터 왓슨이다. 의료진이 각종 임상 정보를 입력하면 왓슨은 환자의 상태와 치료법 등을 조언해준다. 수백만건의 진단서 환자기록 의료서적 학술지 엑스레이 등의 빅데이터를 토대로 가장 확률이 높은 병명과 성공 가능성이 큰 치료법 등을 알려준다. 왓슨의 역할이 커지자 슬론케터링 암센터는 최근 ‘왓슨 종양내과’라는 부서까지 만들었다. 컴퓨터가 의사 대신 환자를 진단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마이크 로딘 IBM 소프트웨어그룹 수석부사장은 “의료진이 사례별로 수천쪽의 정보를 일일이 봐야 하는 수고를 덜어준다”며 “왓슨이 환자 진단의 정확성과 치료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PB 투자상담 등에 활용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올해 세계 정보통신기술(ICT)업계 4대 주요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빅데이터를 꼽았다.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수준이 높아지고, 활용 범위가 대폭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닐 멘델슨 오라클 빅데이터 상품관리담당 부사장은 “빅데이터는 올해 기업경영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해 여러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빅데이터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은 인공지능 클라우드 등 컴퓨팅 기술의 발달 덕택이다. 미국의 인기 퀴즈쇼 ‘제퍼디’에서 문제를 풀던 왓슨은 진화를 거듭해 금융 보험 의료 제약 상거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된 데 따른 것이다.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은 자산관리업무에 왓슨을 도입했다. 자산관리 전문가인 프라이빗뱅커(PB)가 왓슨을 적용한 시스템에 접속하면 특정 고객과 어떤 상담을 해야 할지부터 어떤 기업이나 상품에 투자해야 할지까지 조언해준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뉴스, 날씨, 주식시장의 변화 등 투자 환경과 관련한 방대한 정보는 물론 특정 고객의 투자 성향까지 분석해 적합한 상품을 찾아낸다. 고객과의 이메일, 전화통화 등을 토대로 분석한 투자 성향 카테고리는 99개에 이른다. 배영우 한국IBM 기술자문(상무)은 “PB들은 여덟 시간 근무하면 이 가운데 두 시간, 하루의 약 4분의 1을 정보 탐색에 쓴다”며 “왓슨을 도입하면 이런 수고를 덜게 돼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카카오 등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결합해 자산관리 자문을 제공하는 로보어드바이저 상품 개발을 추진 중이다. 국민은행은 국내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로보어드바이저 특정금전신탁 상품을 최근 내놓기도 했다.

1만여개 날씨 시나리오로 보상금 계산

미국 벤처 클라이밋코퍼레이션 앱을 이용해 한 농부가 농장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미국 벤처 클라이밋코퍼레이션 앱을 이용해 한 농부가 농장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미국 등 해외에선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혁신적인 벤처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날씨 데이터로 보험을 설계해 판매하는 클라이밋코퍼레이션이 대표적이다. 2012년 여름, 미국 오클라호마주 케이트 카운티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낮 최고기온이 두 달 연속 위험 수위(36도)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제임스 맥도날드 씨(39)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클라이밋코퍼레이션 보험에 가입해뒀기 때문이다. 보상금을 청구하기 위해 서류를 작성할 필요도 없다. 보험사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지 않아도 된다. 이상기후로 농작물을 제대로 수확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면 보험사가 자동으로 보상금을 지급해주기 때문이다. 빅데이터가 이를 가능케 했다.

클라이밋코퍼레이션은 미국 국립기상서비스(NWS)에서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지역별 기온 습도 강우량 등 기상 데이터와 농무부가 제공하는 지난 60년간 단위면적당 수확량 토양 데이터를 활용한다. 미국 전체 지역을 50만개 세부 지역으로 나눈 뒤 확보한 데이터를 자체 알고리즘에 입력해 각 지역에 대한 1만여개의 하루 날씨 시나리오를 구성한다. 이 정보로 옥수수 콩 보리 농사 등의 가뭄 혹서 냉해 홍수 등 피해에 대비한 맞춤 보험을 설계해 판매한다. 예컨대 하루 기온이 36도 이상인 날은 알고리즘이 알아서 농작물 성장과 수분 공급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열압박일’로 분류한다. 열압박일엔 경지 1에이커당 1달러 혹은 2달러의 보상금을 농부에게 준다. 열압박일이 사흘 이상 계속되면 장기간 혹서로 판단해 보상금이 두 배로 뛴다.

이 회사는 구글 출신인 데이비드 프라이드버그와 스라이 칼리크가 2006년 세웠다. 창업 7년 만인 2013년 몬산토에 11억달러(약 1조3000억원)에 회사를 매각했다. 이후 독립적인 사업부서로 운영하다가 작년 보험 부문만 떼어내 금융업체인 암트러스트파이낸셜서비시스에 또 팔았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