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의 일정액을 연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기부연금제 도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기부자의 노후 소득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정부가 적극 추진했지만 국회의 무관심으로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부연금 도입 시점이 기약도 없이 미뤄지면서 노후 불안을 우려한 베이비붐 세대의 기부심리가 얼어붙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부하면 연금받는 법, 5년째 '찬밥 신세'
◆기부연금안 폐기되나

연내 기부연금제 도입은 불가능해졌다. 이 내용이 담긴 나눔기본법 개정안이 19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탓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좋은 일은 하고 싶지만 노후가 불안해 선뜻 기부를 결정하지 못하는 중산층의 관심이 높았는데 관련 법 제정안이 국회에서 결국 사장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기부연금제는 개인이 현금이나 부동산을 공익법인에 기부할 경우 기부액의 일정 비율(최대 50%)을 본인이나 가족이 매달 연금처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사회에 공헌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기부한 뒤에 경제적 여건이 악화되는 경우를 우려했던 이들이 주요 가입 대상이다.

예를 들어 재산 1억원을 기부하고 연금 수령비율을 50%로 정할 경우 5000만원은 기부자가 원하는 곳에 기부된다. 나머지 5000만원은 국민연금공단에 이전돼 연금 형태로 기부자에게 나눠 지급된다. 1억원을 낸 기부자가 65세부터 연금을 받는다고 치면 월 25만원을 사망할 때까지 수령할 수 있다.

◆5년째 ‘헛바퀴’만

기부연금제를 시행할 법적 근거가 담긴 나눔기본법은 국회에서 수년째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2011년 당정 협의를 통해 기부연금을 도입하기로 한 뒤 2012년 정부가 제정안을 입법예고하며 대대적으로 추진했지만 ‘중복 규제’ 등을 우려한 일부 자원봉사단체의 반대로 무산됐다. 자원봉사단체들의 의견을 반영한 수정안이 다시 국회에 제출됐지만 기초연금법과 감염병관리법(메르스법) 등 대형 이슈에 묻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국회 관계자는 “다들 눈에 띄는 법만 우선 처리하려다 보니 기부 토양을 닦는 중요한 법엔 정작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19대 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무산되면서 기부연금제도준비단까지 꾸려 도입 실무를 준비해 왔던 복지부 등 관계 부처도 힘이 빠지게 됐다. 김성렬 행정자치부 차관이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기부자가 맡긴 기부금 중 일부를 사망 전까지 연금처럼 되돌려주는 제도를 추진하겠다”며 재추진 의사를 밝혔지만 기존안을 재활용할지, 행자부 소관의 기부금법을 개정할지조차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베이비부머 은퇴 시작했는데….

정부가 기부연금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조세나 보험료 인상만으로는 커져만 가는 사회복지 재정을 부담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민간의 자발적인 기부가 복지사회의 한 축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미국은 기부연금기금 규모가 150억달러(약 18조원)에 달할 만큼 기부연금이 정착돼 있다. 평균 4만3000달러(약 5000만원)를 기부한 미국인 1만여명이 현재 연금을 받고 있다.

한국도 기부연금을 도입할 만한 여건은 충분히 마련됐다는 분석이다. 경제발전 시기에 부를 축적한 베이비붐 세대도 은퇴를 시작했다. 정부 관계자는 “중산층이 노후 걱정 없이 자산을 기부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복지사회도 지속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