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면목동에 세탁 전문점 ‘운동화 손세탁 이불’을 창업한 김애리 씨(왼쪽)와 친구 김은 씨가 9일 매장에서 세탁을 끝낸 운동화를 들어 보이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서울 면목동에 세탁 전문점 ‘운동화 손세탁 이불’을 창업한 김애리 씨(왼쪽)와 친구 김은 씨가 9일 매장에서 세탁을 끝낸 운동화를 들어 보이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컴퓨터 부품 유통회사에 다니던 김애리 씨(31)는 2013년 회사에 사표를 내고 이듬해 서울 면목동에 세탁소를 차렸다. 가족들은 “멀쩡한 직장 다니다 무슨 짓이냐”고 야단이었지만 김씨는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가 늘고 있어 세탁업의 미래가 밝다”고 설득했다. 1년 가까이 전남 담양에 있는 ‘세탁 장인’을 찾아가 기술 전수도 받았다. 김씨는 “치킨집이나 카페 창업도 고려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요식업보다 기술로 창업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매출을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렵지만 회사에 다닐 때보다 수입이 낫다”며 웃었다.

‘몸 쓰는 기술’을 배우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도전한 업종은 세탁, 수제화, 의류 수선 등이다. 일이 고되다는 인식이 있어 젊은이들이 회피해온 업종이지만 숙련을 통해 자신만의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청년실업률이 9.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이들의 도전에 더욱 눈길이 쏠린다.

김은 씨(32)는 취미 삼아 배워본 의류 수선 기술에 빠져 2013년 회사를 그만뒀다. 당시 서울 동숭동의 한국패션실용전문학교 주말 수선반에서 만난 강사가 해준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는 “60세가 넘자 친구들은 집에서 손주를 보고 있지만 나는 아직 일을 하고 있다”며 “기술 하나만 있어도 언제든 원할 때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선과 양재를 배워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홈패션 관련 강의를 하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김씨는 올해 7월쯤 수선과 의상 제작 공방을 창업할 계획이다.

수제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서울 성수동 일대 구두 공방을 찾아가는 젊은이도 있다. 생활소품 판매 사이트 ‘디장인’을 운영하는 양인준 씨(34)는 저녁에는 성수동으로 가 수제화 장인에게 기술을 배운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디자이너는 나이가 들수록 직장에서 은퇴 압박을 받지만 공예기술자는 나이만큼 깊어진 기술을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현장 기술자들에게 이 같은 ‘젊은 피’의 유입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49년간 제화업에 종사하며 서울 성수동에서 ‘한울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철수 씨(61)는 “산업현장에서는 50대 장인이 ‘막내’로 불릴 만큼 젊은이가 적다”며 “수제화 기술의 명맥이 끊길 것을 우려하던 차에 관심을 나타내는 젊은이가 나타나 다행”이라고 말했다.

현장 기술자들은 또 기술직을 얕잡아보는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대현동에서 ‘리더 옷수선’을 운영하는 김재현 씨(45)는 “의상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생은 많지만 실제 옷감을 재단하고 옷을 만드는 일에 뛰어드는 청년은 드물다”며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 일을 3D업종으로만 바라본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마지혜 기자/김진연 인턴기자(고려대 4년)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