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공약 남발과 '당선자 저주' 고리 끊어야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환호를 받으며 입국했다. 회견장으로 이동하는 도중 누군가와 수신호를 교환하는 듯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안대로 한 눈을 가린 환경미화원이 주먹을 불끈 쥐고 응대했다. 기자회견에서 그 상황에 대한 질문이 제기됐다. 그레이엄 목사는 신학적 교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다며 기뻐했다. “하나님은 하나다”는 의미로 엄지손가락을 들고 다니는데 그 사람이 성부와 성자가 있다며 손가락 둘을 펴더라는 것이다. 성령도 있다는 의미로 손가락 셋을 폈더니 그쪽에서 주먹을 쥐며 ‘삼위일체’라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게 생각한 기자가 미화원을 찾았을 때 그는 화가 나 있었다. 그레이엄 목사가 보자마자 “너, 눈이 하나구나”라며 손가락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네 눈은 둘이냐”고 손가락 둘을 들었더니, “너와 나의 눈을 합하면 셋”이라며 세 손가락을 쳐들더라는 것이다. “한 대 맞고 싶냐”고 주먹을 흔들었단다. 물론 우스갯소리다. 의사 표시의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괴리를 빗댄 농담이다.

누리사업 대통령 공약을 놓고 ‘돈을 누가 내느냐’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이다. 경제민주화 공약 파기 논쟁도 시끄럽다. 선거판 공약이 시장판 약장수 목청보다 가벼워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인사에서 고해성사가 터져 나왔다. 경제성장률 7% 공약을 못 지켜 미안하다면서 이회창 후보가 실천 불가능한 6%를 내세우기 때문에 화가 나 1%포인트를 올려 7%로 질러 버렸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은 선심성 복지와 대기업 때리기 공약으로 난장판이었다. 문재인 캠프의 무상 시리즈와 대기업 규제 공약이 먹혀들어가자 박근혜 캠프도 저질러 버릴 방도 찾기에 나섰다. 3~5세 유아에 대한 무상보육 누리사업이 떴다. 대기업 규제 이슈를 날릴 경제민주화 신데렐라도 영입했다.

누리사업 실행 재원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특정되자 일부 교육감이 반발하고 나섰다. 대통령 공약이니 중앙정부가 별도의 재원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우리 재정은 국세와 지방세 세수 비중은 8 대 2 수준인데 중앙과 지방의 지출 비중은 4 대 6으로 미스매치가 심각하다. 경직적 지방교부금으로 국가 재정이 엉망이다. 저출산으로 초·중·고 학생 수가 급감해도 교육교부금은 줄일 수 없는 구조다. 시·도 교육감은 세금은 한 푼도 걷지 않고 막대한 교부금을 주무른다. 일부 교육감은 자신의 선심공약은 고집하면서 누리예산 편성은 거부한다.

경제민주화는 다른 나라에서는 경제전문가도 모르는 완전 국내용이다. 북한의 정책으로 오해받기 딱 좋다. 경제민주화와 상통하는 주장을 펼친 인사의 집중적 공격 대상은 ‘문어발 경영’이었다. 목재, 제지 등 지역적 이점을 지닌 사업을 모두 버리고 휴대폰에 집중하던 노키아가 순식간에 나가 자빠졌다. 음향기기에 집중했던 소니도 쪼그라들었다. 그러자 유행이던 ‘문어발 경영’ 두드리기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경제민주화 세력이 자발적으로 이탈한 후에도 박근혜 정부는 공약 때문에 신규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관철했다. 돌부처처럼 출자구조를 고정시킬 방도가 없자 대기업마다 기존순환출자 정리에 나섰다. 투자와 고용은 뒷전으로 밀렸고 보유 재원은 자사주 매입에 허비됐다. 대기업이 축소경영으로 돌아서면서 성장동력은 소실됐고 청년실업은 더욱 악화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야권은 경제민주화 공약 파기 비난을 계속한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 출범 이후 기업활력제고법 처리의 여야 합의가 번복된 우여곡절도 심상치 않다.

선심성 복지와 대기업 때리기 공약은 낙선자 측에서 더욱 적극적이었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이합집산으로 재편되면서 낙선자 공약은 종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당선자 공약은 찍지도 않은 쪽에서 계속 우려먹는다. 남발을 막기 위해 ‘공약 페이고(pay-go)’를 도입해 소요 재원 조달방안을 제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충분한 검토 없는 즉흥적 공약의 출현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