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KIST 50주년 기념식 해프닝
4일 오전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존슨 강당에서 KIST 설립 5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KIST는 1966년 한국 젊은이들의 월남전 참전 대가로 박정희 대통령과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 간 합의로 설립된 과학기술 출연연구기관이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이날 원조국인 미국 측 손님으로 참석해 “‘카이스트’는 한국 경제와 기술의 발전소였다. 카이스트는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미국과 긴밀한 동반자”라고 말했다. 리퍼트 대사는 5분 가까운 축하 연설 내내 카이스트 역사와 업적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리퍼트 대사는 축사를 마치며 “카이스트 감사합니다. 함께 갑시다”라는 한국말로 인사를 마무리했다.

리퍼트 대사가 이날 줄기차게 말한 카이스트는 생일 주인공인 ‘키스트(KIST)’와는 다른 대전에 있는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일컫는 말이다. 일반인은 물론 지식인들 중에서 키스트와 카이스트를 헷갈려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외빈의 사소한 실수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이어진 정부측 관계자 축사에서도 같은 실수가 반복됐다. 그는 “한국과학기술원의 창립 50주년을 축하한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KIST가 아닌 KAIST를 언급한 것이다. 생일 주인공 이름이 계속 달리 언급되자 행사에 참석한 과학자들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KIST는 1년 전부터 50주년 기념 행사를 준비했다. 2066년까지 다시 한국의 성장을 이끌 연구소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담은 ‘비욘드 미라클(beyond MIRACLE·기적을 넘어서)’도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발도상국에 설립된 가장 오래되고 성공적인 과학기술 연구소로서 위상을 과시하고 싶어서였을 게다.

그래서인지 기념식을 마친 KIST 과학자들은 뒷맛이 씁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50년 동안 쌓아온 자신들의 위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행사에 참석했던 한 연구원은 “정부 인사와 미 대사의 진심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큰 결례를 한 것”이라며 “일반인이 자주 범하는 실수인 만큼 오히려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박근태 IT과학부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