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 깨고 첫 여성조리장 올라
‘동네 대장금’ 어머니 손맛 물려받아…대학 조리과 졸업 후 롯데호텔 입사
IMF 때 실직…독기 품고 재취업…유행 안타는 한식 선보이자 인기몰이

전통음식도 시대와 호흡해야
月 1회 유명식당 들러 ‘비법 탐험’…석 달에 한 번 새 메뉴 경연대회
‘제대로 된 한식 내는 곳’ 입소문…기업 회장은 물론 대통령들도 발길
국내 특급호텔 유일의 여성조리장인 이금희 메이필드호텔 조리장 은 전통음식도 시대 변화와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국내 특급호텔 유일의 여성조리장인 이금희 메이필드호텔 조리장 은 전통음식도 시대 변화와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쿡방’을 보고 요리사를 꿈꾼다면 포기하세요. 화려한 면만 보고 도전하기엔 요리사는 고된 직업입니다.”

이금희 메이필드호텔 조리장(49)은 “TV를 보고 와서 일을 해보곤 한 달도 안돼 바리스타가 되겠다, 파티셰가 좋겠다며 떠나는 사람이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요리는 학력 성별 등과 상관없이 노력에 따라 최고가 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며 “실력과 끈기에 자신이 있다면 도전해볼 만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 조리장은 요리경력 26년에다, 14년을 특급호텔 조리장으로 일하고 있는 한식 전문가다. 롯데호텔 한식당 무궁화에서 출발해 지금은 서울 외발산동 메이필드호텔의 한식당 봉래헌과 낙원을 총괄하고 있다. 국내 특급호텔 조리장 중 유일한 여성이다. 남편인 이두희 롯데호텔 조리장(53·아래 사진 오른쪽)과 함께 유일의 부부 조리장이기도 하다.

전통한식을 맛깔스럽게 차려내는 봉래헌은 김영삼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도 외국 국빈들의 대접장소로 찾을 정도로 이름값이 높다. 대장금 등 한류 드라마 영향으로 외국 관광객의 발길도 이어진다.

시골 소녀, 요리사를 꿈꾸다

충남 서산에서 3남1녀의 외동딸로 태어난 이 조리장은 손맛 좋은 어머니의 요리를 어린 시절부터 어깨너머로 배웠다. “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동네에서도 유명했습니다. 마을 잔치가 있을 때면 늘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죠.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자연스레 요리를 익혔습니다.”

적성과 관심을 살려 1986년 경희호텔경영전문대 조리과에 입학했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한 건 졸업 직후인 1987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입사하면서부터다. 이 조리장은 “어릴 적부터 요리를 좋아하고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한 데다, 올림픽을 앞두고 요리사 수요가 늘던 때라 비교적 쉽게 특급호텔에 입사했다”고 말했다.

처음 배치받은 곳은 양식당이었다. 하지만 6개월 만에 한식당 무궁화로 자리를 옮겼다. 일류 요리사의 꿈을 양식당에서는 이루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적극 자원했다. “양식당은 여자가 불을 다루는 것을 막아 샐러드밖에 만들 수 없었고, 남성 중심으로 운영돼 여자는 뒤치다꺼리만 했다”는 설명이다.

진짜 맛은 요리법을 외워선 만들 수 없다

무궁화의 주방은 양식당과는 반대로 여성 중심이었다. 하지만 텃세는 더 강했고 누구도 요리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20㎏이 넘는 소스 냄비를 옮기고, 종일 젓가락으로 반찬만 담아 손에 물집이 잡히는 일의 연속이었다. 설거지와 재료 다듬기도 늘 그의 몫이었다. “한번은 반나절 넘게 달걀 다섯 판으로 지단을 부쳤는데 선배가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더군요. 불 조절이 안돼 표면이 매끄럽지 못하다면서 말이죠.”

상한 자존심과 억울함에 눈물을 글썽이는 시간이 반복되다 기회가 찾아왔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현 총괄회장)이 예정에 없이 식당을 찾았다. 마침 자리를 비운 신 회장 담당 선배의 일이 그에게 맡겨졌다. 눈치가 빠른 데다 손님들의 식습관을 유심히 관찰해 와 신 회장의 식성을 파악하고 있던 덕분이었다. 이 조리장은 “신 회장은 생선 중에서 대구와 민어를 좋아하고, 젓갈을 많이 넣은 얼갈이김치를 선호한다”며 “취향에 맞는 음식으로 점수를 딴 것을 계기로 VIP들을 전담하게 됐다”고 전했다.

음식 맛에 대한 ‘감’도 익혀나갔다. “계량화된 조리법으론 배울 수 없는 게 있더군요. 이 정도 간에서 소금을 얼마나 더 넣어야 맛이 있는지, 육수에 넣는 무는 어떤 크기로 잘라야 하는지 등을 눈으로 보고 입으로 먹으며 배웠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혀로는 ‘이거다’라고 느낄 수 있는 감을 깨친 것이죠.”

외환위기로 실직…“돌아갈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

평생의 반려자 이두희 조리장을 만난 곳도 무궁화다. 남편은 롯데호텔 공채 1기로 6개월 먼저 무궁화로 배치됐다. 처음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관심을 끌려고 남편이 그를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해 3년간 쫓아다닌 끝에 연애를 시작했다”며 “동성동본의 벽을 넘어 아내와 결혼한 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결혼 후 남편은 잠실 롯데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1998년 외환위기로 부부 중 한 사람이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왔다. 아내가 퇴직했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해서인지 퇴직 후 첫 3개월은 행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이 ‘고팠다’. 삶을 지탱해 준 요리에 대한 열정이 꺾인 뒤의 공허였다. “주방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는 각오로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두 아이의 엄마로 경력이 끊어진 여성요리사를 불러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눈높이를 낮춰 작은 관광호텔 주방으로 출근했다. 이 조리장은 “작은 데서 일해 보니 특급호텔 요리사 생활을 힘들어하고 투정 부렸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며 “요리를 시작한 후 그때 처음으로 독기를 품게 됐다”고 말했다. 독한 마음으로 요리에 매진하던 중 새로 개장하는 메이필드호텔에서 조리장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지원했다. 당시 36세로 호텔 한식당 조리장을 맡기는 어렸지만 열정과 무궁화에서의 경력 덕분에 합격했다.

“유행 안 타는 제대로 된 한식 선보이자”

새 호텔의 주방을 만드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주방 요리사 10여명을 채우기까지 거쳐 보낸 사람이 50명에 달했다. 어렵게 사람을 찾아 기껏 일을 가르치면, 연봉을 올려 이직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식당의 콘셉트를 잡는 일이 가장 큰 숙제였다. 당시 유행이던 퓨전한식과 전통한식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칼자루를 쥔 그는 전통방식의 한식당으로 최종 결정했다. 이 조리장은 “유행은 언제든 흘러갈 수 있지만 진짜는 계속 남는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유행 안 타는 전통한식’을 위해 이 조리장은 좌고우면 없이 직진했다. 아침마다 반찬을 새로 하고, 김치부터 간장 고추장 된장 등 장도 전부 직접 담갔다.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불도 센 불 대신, 천천히 익혀가며 조리했다. 채소는 충남 예산의 직영 농장에서 직접 재배했다. 그는 “한식은 꾸준한 정성과 시간이 필요한 음식”이라며 “기본이 되는 과정을 꾸준히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꾸준함을 밀고 나가자 봉래헌은 제대로 된 전통한식집으로 장안에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등 전·현직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국빈들을 데리고 왔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가족과도 틈틈이 봉래헌을 찾았다. 드라마 대장금 덕분인지 외국인도 몰려들었다. 이 조리장은 “대기업 회장들이 외국 손님과 자주 오고, 대장금 등 한류 드라마의 영향으로 외국 관광객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전통도 새로운 트렌드와 호흡할 수 있어야”

5년 전부터는 계절마다 전북 부안, 경남 통영 등 지방 산지를 찾아다니고 있다. 해산물이 성에 차지 않아 직접 구하기 위해서다. 그는 “제일 좋은 해산물은 지방에서 소비되고, 서울로 올라오는 것 중에선 좋은 것이 많지 않다”며 “직접 눈으로 보고 계약하면 농민들도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통음식이라고 트렌드를 무시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게 시대와 호흡하는 것이 전통의 수명을 늘리는 데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다. 한 달에 한 번은 유명식당에 들러 음식을 맛보고 새로운 소스나 요리법을 개발한다. 직원들에게도 음식값을 지원하며 많이 가볼 것을 주문한다. 그는 “외부식당 음식을 맛보게 한 뒤 석 달에 한 번 정도 새 메뉴 경연대회를 열고, 좋은 건 정식 메뉴에 활용한다”고 했다.

조리사 부부의 다음 꿈은 소박하다. 시골로 내려가 농사지으며, 좋은 음식을 내놓는 작은 식당을 여는 것이다. 남편 이두희 조리장은 “특급호텔 요리사라는 행운을 얻었다”며 “은퇴 뒤에는 좋은 음식으로 배운 것과 받은 것을 주변에 나눠주고 싶다”고 말했다.

■ 호텔 요리사 되려면

대학 조리과 나오는 게 일반적
학원서 자격증 따면 대부분 경력 쌓은 후 입사


[人사이드 人터뷰] 이금희 조리장 "군기 센 한식주방서 수련하는데 신격호 회장 갑자기 찾아왔어요…"
요리사가 되는 길은 다양하다.

대학에서 호텔조리학, 외식조리학 등 요리 관련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대학에서는 닭 돼지 등 육류와 해산물 등 재료 다듬는 법부터 음식 만드는 과정을 실습하고, 조리학 영양학 등 이론적인 접근도 한다. 전문대학은 한 학기 정도를 제외하고는 실습을 중심으로 수업한다.

요리학원을 다니며 기술을 습득하고 자격증을 따는 길도 있다. 물론 자격증이 있어도 특급호텔 주방에 들어가려면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작은 규모의 식당에서 경력을 쌓은 뒤 이직하는 방법도 있다.

개인 요리사 밑에 들어가 배우기도 한다. 최근엔 신사동 가로수길, 연남동 등지의 ‘핫 플레이스’에서 독창적인 자신만의 요리로 승부하는 신진 요리사가 많다.

요리가 발달한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 공부한 유학파도 있다. 미국 CIA요리학교, 프랑스 르코르동블루, 일본 쓰지조리사전문학교 등이 유명하다. 유학 후 국내로 들어오거나 현지에서 경험을 쌓아 레스토랑을 여는 사례도 있다.

서울 메이필드호텔 한식당 봉래헌의 박영수 요리사는 “쿡방 등에 나오는 요리사는 화려해 보이지만, 무거운 재료를 나르는 등 육체노동은 기본이고 끊임없이 새로운 요리법을 연구해야 하는 등 아이디어가 많이 필요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강영연/이수빈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