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색깔이 다른 눈동자란 뜻의 ‘오드 아이(odd-eye)’는 한경닷컴 기자들이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입니다. 각을 세워 쓰는 출입처 기사 대신 어깨에 힘을 빼고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풀어냈습니다. 평소와 조금 다른 시선으로 독자들과 소소한 얘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 출처 tvN 드라마 '미생' 홈페이지
/ 출처 tvN 드라마 '미생' 홈페이지
[ 김봉구 기자 ]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미생’에 이런 대사가 나와. “어떻게든 버텨라. 버틴다는 건 ‘완생’으로 나아간다는 거니까…” 나, 이 대사에 완전히 공감했어. 딱 내 상황 같았다니까.

난 10년 전에 태어났어. 사실 말이야, 내 배경은 빵빵해. 여당이 낳고 정부가 키웠거든. 이 정도면 ‘금수저’잖아. 그런 내가 왜 미생에 감정이입 했을까? 솔직히 얘기해서 여당과 정부가 날 애지중지 키우진 않았어. 그러면서 제대로 못 키운다고 욕도 많이 먹었지.

그래도 정부는 “어떻게든 버텨서 완생(完生)으로 나아가라”는 오 과장 같은 마음이었을 거야. 실제로 얼마 전엔 내가 ‘완생’이 됐다고 여기저기 자랑도 했어. 그런데 이를 어쩌나. 그걸로 또 한 소리 들었지, 이게 무슨 완생이냐면서. 아무래도 난 아직 미생(未生)인가봐.

아마 대학생이라면 내가 누구인지 눈치 챘을 거야. 맞아, 난 ‘반값등록금’이야.

‘반값등록금을 완성했다’는 정부 광고, 한 번쯤은 봤지? 어이없다는 학생들이 많더라. 이유가 있어. 내 앞에 붙는 수식어가 달라. 한쪽은 ‘소득연계형’을, 다른 한쪽은 ‘고지서상’을 붙이잖아. 정부는 국가장학금 투입분을 반영해 따지는데, 대학생들은 이런저런 단서조항 달지 말고 등록금 자체를 반으로 깎아달라는 거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대선후보 시절 박근혜 대통령의 '반값등록금 기자회견' 장면, 반값등록금 달성(TV)·완성(KTX)·실현(지하철) 등 문구의 광고사진 갈무리. / 대교연 제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대선후보 시절 박근혜 대통령의 '반값등록금 기자회견' 장면, 반값등록금 달성(TV)·완성(KTX)·실현(지하철) 등 문구의 광고사진 갈무리. / 대교연 제공
양쪽 사이에서 내가 마음고생이 심했어. 왜 이렇게 됐는지 찬찬히 따져보자고.

그러니까 2006년 지방선거 때야. 개명 전이니 한나라당이었지. 내 출생을 공약으로 내걸었어. 기억나려나. 내 쌍둥이 형제로는 ‘반값아파트’도 있었지. ‘통 크고 손 큰’ 대형마트 제품들보다 내가 훨씬 먼저 태어났던 거야.

대학 등록금이 많이 오르던 때였거든. 지금이야 법으로 ‘등록금 상한제’를 지키도록 했잖아. 정부 지원사업에도 등록금 지표를 반영해 동결이나 인하를 유도하고 있고.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는 문제의식이 커지던 참이었어. 우리나라가 늘 참고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있잖아. OECD 국가 중 등록금 수준(구매력지수 환산)이 두 번째였던 거야. 미국에 비하면 국내 등록금이 낮다고들 했었는데, 그 미국을 빼면 가장 높았던 거지.

그렇게 내가 태어났지만 정작 이명박 정부는 잠잠했어. 재정부담 때문인지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 같은 제도에 더 열심이었지. 오히려 그땐 야당이 날 데려다 키웠다고 할까. 그러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내 완생이 떡하니 등장한 거야.

/ 장세희 기자
/ 장세희 기자
정부가 나의 완생을 주장하는 근거는 통계치야. 2011년 기준 등록금 총액 14조원의 ‘반값’인 7조원이 국가장학금으로 지급됐다는 거지. 여기엔 각 대학 자체노력과 연계해 지원되는 교내장학금(국가장학금 II유형)도 포함돼.

날 미생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은 이런 대목에서 정부 주장이 부풀려졌다고 봐. 기존 교내장학금을 증액하고 성격을 바꾼 정도라, 완생이라기엔 부족하다는 거야. 실제 국가장학금 지급률이 전체 대학생의 41.7%(2014년 2학기 기준)에 그친 점, 대선공약 내용인 ‘저소득층(소득 1~2분위) 전액무상’을 이행하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로 꼽지.

결국 대학생들 입장에선 “장학금 지급 말고 등록금 인하”가 핵심이더군. 내가 피부에 확 와 닿진 않을 거야. 하지만 너무 날 미생으로만 몰아붙이진 말아줘. 적어도 내가 세상에 나온 뒤 등록금 상승세는 잡혔으니까. 이건 인정해도 되지 않을까.

알아, 서울시립대처럼 등록금 자체를 반값으로 깎는 게 대학생들이 바라는 내 완생이란 걸. 그런데 전체 대학을 대상으로 하려니 만만찮네. 요즘 시끄러운 내 후배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만 봐도 알 수 있잖아. 그러니 화내기보단 날 잊지 말고 계속 애정 어린 관심을 보여줬으면 해.

재원만 충분하면 가능할 텐데. 먼저 겪어본 입장에서 앞으로는 여야와 정부를 막론하고 ‘페이고(Pay Go) 원칙’을 지켜달라고 부탁할게. 말이 좀 어렵나? 한 마디로 무조건 던지지 말고 예산확보 방안이 전제될 때 추진하자는 거야. 그래야 후배 법안과 정책들이 완생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지.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