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마라톤 최고기록 2시간53분, 풀코스 100번 넘게 완주…주말엔 시각장애인팀 코치로
2시간53분20초. 2007년 한 국제 마라톤 대회 풀코스(42.195㎞) 여자 일반부에서 우승할 때 세운 기록이다. 19년째 깨지지 않고 있는 여자마라톤 한국 기록(2시간26분12초)과 비교해보면 27분 정도 차이가 난다. 주변에선 “선수급 기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기록의 주인공은 마라톤 선수가 아니다. 김영아 KEB하나은행 안전관리실 과장(42·사진)이 주인공이다. 김 과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8세 때인 1992년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에 입사했다. 어머니의 병간호 때문에 회사를 나와 2002년 한 해를 쉰 뒤 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에 들어와 지금까지 일했다. 총 23년간 은행에만 몸담았다.

시각장애인과 함께 뛰고 있는 김영아 과장(오른쪽).
시각장애인과 함께 뛰고 있는 김영아 과장(오른쪽).
마라톤에 입문한 건 완전히 우연이었다. 2003년 완주만 하면 공짜도시락을 준다는 말에 솔깃해 금융권 마라톤대회에 나갔다. 신발은 빌려 신었다. 결과는 하프코스 우승. 김 과장은 “내가 포기하지만 않으면 무엇이든 이뤄지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을 그때 만났다”고 말했다.

그 후 김 과장은 풀코스만 100번 넘게 완주했다. 국내 주요 대회 일반부 우승을 휩쓸며 ‘선수급’으로 성장했다. 김 과장은 직장생활하면서 틈을 내 마라톤 연습을 하고 있다. 직장인치고는 훈련량이 만만치 않다. 매일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한 번, 출근 후 점심시간에 한 번, 아직 어린 아들을 재운 후 늦은 밤에 한 번 뛴다.

김 과장은 2008년부터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뛰고 있다. 혼자 뛰며 우승도 많이 했지만, 우승을 몇 차례 한 뒤부터는 주변에서 달리고 있는 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시각장애인 마라톤 클럽의 코치를 맡아 매주 토요일에 함께 훈련도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함께 달리는 사람에게 온전히 몸을 맡긴 채 달려요. 나를 완전히 믿어주는 사람과 함께 달릴 때의 행복을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를 겁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