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부자감세'란 막말로 누가 뭘 얻었나
시장경제가 정착할수록 정부의 정책 수단은 줄어든다. 민간자본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금융회사를 멋대로 동원할 수도 없고, 국제적 감시망 때문에 환율 조정도 어렵다. 복지 부담 증가로 산업정책에 쓸 예산도 부족하다. 자유무역 기조 확산으로 특정 산업에 대한 지원도 어렵다. 조세정책이 최후의 보루다.

일자리 부족으로 세계 각국에서 아우성이다. 투자 유치 경쟁은 전쟁 수준이다. 같은 나라에서도 지역 간 대립이 치열하다. 법인세율 인하가 최고의 무기다. 강력한 노동조합과 사회복지로 인한 ‘영국병’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금융 지원까지 받았던 영국이 현재는 세금 인하 경쟁의 선봉장이다. 2010년 28%였던 법인세율을 2020년엔 18%까지 계속 인하한다. 파운드화 강세는 지속되고, 고용 및 성장은 유럽 최고 수준이다. 미국은 주(州)별로 지방세분 법인세율 인하를 통한 대기업 본사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은 이명박 정부에서 마지막 법인세 인하가 단행됐다. 25% 세율을 두 차례로 나눠 20%까지 인하하는 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1차적으로 22%로 인하하자 야권에서 ‘부자감세’란 구호를 들고 나왔다. 2차 인하는 시행도 못하고 재개정을 통해 철회됐다. 소득세와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을 33%로 일치시키는 정부 개정안은 여당에서 먼저 깔아뭉갰다. 인하한 부분이 법인세밖에 없는데 ‘부자감세’란 막말이 등장했다.

부자는 ‘재물이 많아 살림이 넉넉한 사람’을 말한다. 법인은 부자를 따질 대상이 아니다. “법인세 인하 혜택이 주주에게 돌아가고, 주주는 부자이기 때문에 결국 ‘부자감세’”란 주장도 억지다.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전횡한다”는 비난을 받는 대주주들은 사실 배당을 받거나 주식매매로 차익을 얻을 경우 고율의 소득세를 부담한다. 더 많은 부분을 보유한 해외 펀드와 소액주주는 배당소득이 분리과세되고, 주식매매차익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돼 법인세 인하 혜택을 챙긴다.

법인세 인하의 목표는 기업의 투자 의욕을 높이는 것이다. 기업은 투자를 검토할 때 미래 예상 수익에서 세금을 내고 남는 금액의 현재 가치를 산출해 투자비용과 비교한다. 세율이 낮아지면 세후 현금 유입이 늘어남으로써 투자는 더욱 선호된다. 법인세 인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면 투자 증가로 법인세수는 오히려 증가한다. “법인세율을 인하해도 투자가 늘지 않았다”는 일부 비판은 규제환경 및 노사관계 악화와 국제 경기 침체 등 다른 변수를 간과한 것이다.

법인세 인하는 해외 자본의 국내 직접투자를 유인한다.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은 줄어들고, 국내로 유턴(U턴)하는 기업이 늘어난다. 반면 법인세율 인하를 법률에 명시했다가 느닷없이 철회하는 정치적 변덕은 투자를 쫓아내는 치명적 불확실성이다.

‘부자감세’ 막말의 파괴력은 대단했다. 여당도 대기업을 짓누르는 세법조항을 줄줄이 내놨다. 조세감면 활용을 제한하는 최저한세를 대기업에 한해 대폭 인상했다. 이명박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와 박근혜 정부의 ‘기업의 미환류소득에 대한 법인세’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전례가 없는 악성 규제다. 너무 복잡해 전문가도 이해하기 어렵고, 조세원칙에도 어긋난다. 계열사 간 합병이 과도하게 유발됐고, 지나친 현금배당으로 투자재원 고갈과 재무구조 악화 요인이 생겼다.

연구개발 투자와 시장 개척 등 먹거리 찾기보다 정치적 규제 틀어막기에 쓸데없는 진을 빼다 보니 경영은 엉망이다. 정년 연장 등 고용 보호는 더욱 강화됐고, 신규 채용 여력 급감에 따른 청년실업 참상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노무현 정부도 조세개혁 책임을 맡겼을 만큼 세제전문가다. 뒤틀린 법인세제와 백병전을 벌여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기업의 투자 의욕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