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오일쇼크…'중동 텃밭'이 무너진다
국제 유가의 기준 역할을 하는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이 장중 한때 12년여 만에 배럴당 30달러 아래로 추락했다. 자금사정이 나빠진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들은 한국 주식시장에서 대거 자금을 빼가는 등 역(逆)오일쇼크가 현실화하고 있다. 중동에서 진행하고 있는 건설과 플랜트 등의 프로젝트에서 자금 회수에 차질이 생기고, 사업 자체가 중단될 위기에 처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2월 인도분 WTI 가격은 장중 한때 배럴당 29.93달러까지 떨어졌다. WTI가 배럴당 30달러 밑으로 내려간 것은 2003년 12월 초 29.80달러를 기록한 후 처음이다. WTI는 이후 반등해 30.44달러에 마감했지만 연초에 벌써 17.8%나 하락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자금은 지난해 1~11월에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3조9620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지난해 전체 외국인 순매도 규모(약 3조6000억원)를 웃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아랍에미리트(UAE)까지 합치면 같은 기간 빠져나간 중동계 자금은 4조원이 넘는다”며 “12월에도 순매도가 지속된 것으로 보여 지난 한 해 중동계 이탈자금은 4조원을 웃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사우디아라비아, UAE에 노르웨이까지 더한 세 개 산유국이 2014년 7월~2015년 11월에 국내 주식 10조6000억원가량을 순매도, 국내 주식 보유 규모가 지난해 11월 말 현재 30조7000억원 수준으로 줄었다고 분석했다.

국내 사모펀드(PEF)업계도 지난해 10월 이후 중동계 국부펀드 등을 대상으로 한 자금 모집을 사실상 중단했다. 한 PEF 대표는 “중동 대상 자금 유치는 거의 불가능하며 오히려 기존 투자금을 중도에 회수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우리은행 지분을 중동 국부펀드에 팔려던 계획을 중단했다. 중동 펀드들이 투자 의사를 철회했기 때문이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