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왼쪽 세 번째)이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직무능력과 성과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 관련 전문가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왼쪽 세 번째)이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직무능력과 성과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 관련 전문가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30일 내놓은 ‘직무능력과 성과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의 내용은 근로계약도 일종의 계약이므로 한쪽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즉 근로자는 적정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 근로계약이므로 근로자가 계약 내용대로 적정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사용자는 그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통상해고(일반해고)가 가능하려면 저(低)성과자 여부를 판단할 때 객관적·합리적인 평가가 있어야 하고 업무 재배치 등 개선 기회가 반드시 주어져야 한다고 명시했다.

[노사 모두 반발하는 '해고 지침'] 1년 끌다 더 까다로워진 '해고 지침'…재계 "이럴거면 왜 냈나"
올해 초부터 1년 가까이 끌어온 통상해고 지침이 나왔지만 노동계가 여전히 ‘쉬운 해고’라고 반발하고, 경영계는 해고의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오히려 고용 유연성이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통상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등 2대 지침 발표를 서너 차례 미뤄왔다”며 “정부의 기초안은 철저하게 법률에 근거해서 만든 만큼 노동계도 ‘쉬운 해고’ ‘일방적 임금 삭감’이라는 온당치 않은 주장을 되풀이하기보다 조속히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사·정 대타협의 노동계 대표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정부 지침과 관련한 협의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해고의 정당한 이유’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근로기준법 제23조 1항의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다’는 조항의 ‘정당한 이유’를 구체화한 것이다. 정지원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관은 “법원은 ‘정당한 이유’에 대해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정도를 인사경영권, 근로자의 귀책사유, 보호 필요성, 노동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특정 근로자의 업무 능력이 부족하거나 성과가 현저히 낮아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유지하기 힘든 경우 별도의 징계 사유가 없더라도 일반해고의 사유가 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판례에 따라 일반해고가 유효하려면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업무능력 부족이 해고 사유에 해당한다고 명확하게 규정돼 있어야 하고 △인사평가는 객관적·합리적 기준에 의해 공정해야 하며 △교육훈련, 배치전환 등 개선의 기회를 준 뒤에 △업무능력의 개선 가능성이 있는지를 종합해 업무상 지장을 초래한 정도를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업무 처리가 원활하지 않다”는 식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특정 근로자를 평가하거나, 수차례 최하위 등급을 받았더라도 전환배치 등의 개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해고할 수 없다는 얘기다. 평가 방식과 관련해서는 ‘평가 대상의 5%는 무조건 D등급을 줘야한다’는 식의 상대평가만으로는 업무능력을 판단할 수 없다고 적시했다. 해고 통지는 해고 예정일 30일 전에 반드시 서면으로 이뤄져야 하며, 전자결재 시스템이 완벽히 작동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이메일 등의 전자 방식도 예외적으로 인정한다.

‘쉬운 해고’라는 주장과 함께 ‘노동조합 무력화 시도’라고 반발하고 있는 노동계를 의식해 일반해고 예외규정도 뒀다. 정부는 “지침이 특정 근로자의 퇴출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돼선 안 된다”며 최근 평가에서 상위 평가를 받았거나 노조 전임 파견 복귀 후 1년 이내, 전직 명령 후 1년 이내, 출산·육아휴직 복귀 후 1년 이내 근로자 등에 대해서는 해고 배제 기준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 통상해고(일반해고)

사용자가 ‘근로자가 근로계약상의 근로제공 의무를 이행하지 못함’을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 근로자의 부상·질병 등 건강상 이유 또는 업무 능력이나 성과 불량 등을 이유로 한 해고.

■ 징계해고

근로자의 비위행위 등 기업 내 질서위반 행위에 대한 제재 조치의 하나로 해고하는 것. 업무명령 위반이나 비위행위 등으로 업무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회사의 명예·신용을 훼손한 경우에 이뤄지는 해고.

■ 경영상 해고(정리해고)

경제적·산업구조적·기술적 변동 등에 따라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라 기업 유지와 존속을 전제로 해고하는 것. 산업 구조적 변화가 있거나 기술 혁신 또는 기업 도산 등이 우려되는 경우 이뤄진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