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I 가격, 5년 만에 브렌트유 추월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이 5년 만에 북해산 브렌트유를 웃돌았다. 지난해 11월과 올 1월 장중 일시적으로 브렌트유가 WTI 가격을 밑돈 적은 있지만 런던과 뉴욕 상품시장에서 가격이 역전된 채 거래를 마감한 것은 2010년 8월 이후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배럴당 30달러대로 떨어진 국제유가의 추가 하락을 예고하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WTI 2월물은 전날보다 0.92% 오른 배럴당 36.14달러에 마감했다. 반면 런던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2월물은 0.66% 하락한 배럴당 36.11달러까지 밀렸다. 브렌트유는 2004년 7월 이후 11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브렌트유의 가격 프리미엄이 사라지면서 WTI 가격과 비슷해지는 ‘패리티(parity) 현상’이 발생했다며,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40년간 이어진 미국의 원유수출 금지를 폐지하는 법안에 서명한 데 따른 시장 반응이라고 전했다. 미국에서 생산된 원유가 자유롭게 수출되면 미국 내 재고물량이 줄어들어 WTI 가격이 오르거나 브렌트유보다 상대적으로 덜 떨어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WTI는 일반적으로 생산 비용이 많이 들어 브렌트유보다 비쌌지만 2010년 미국의 셰일혁명과 함께 산유량이 대폭 늘면서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해 2010년 이후부터 브렌트유를 밑돌았다.

하지만 최근 수요 부진으로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미국 원유채굴 건수가 감소해 생산량이 줄어들자 WTI 가격하락 속도가 둔화됐다. 국제원유시장의 벤치마크가 되는 WTI와 브렌트유 간 가격 차이가 좁혀졌고, 2010년 이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산 원유가 세계시장에 풀리면서 공급 과잉을 더욱 부추겨 가격 하락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4분기 동안 하루평균 원유 공급이 수요를 150만배럴 웃돌 것으로 예상한 뒤 이 같은 공급 초과는 내년 2분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4분기 원유시장이 다시 균형을 찾기 전까지 과잉공급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내년에 국제유가가 최대 15달러까지 추가로 하락할 것으로 보고 유가 약세에 베팅하는 투기적 거래까지 나오고 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