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 되는 독…미국 컬럼비아대, 치료용 독 DB 구축
영국 추리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는 자신의 추리소설에 독을 자주 등장시켰다. 그녀의 장편 66편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161명이 독살됐을 정도로 독은 그녀 소설에 단골소재로 등장한다. 다년생 식물 벨라돈나에서 추출한 독은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것 중 하나다. 이 독에 중독되면 동공이 커지고 열이 나며 환각 증상과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목숨을 잃는다. 한때 약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미국 등에서는 엄격히 금지된 성분이다. 독이 꼭 사람을 해치는 데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독사의 독에 들어 있는 앤크로드는 심혈관과 신경 치료에, 유럽 무당개구리에서 나오는 독인 봄베신은 소화기 계통에 효과가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데이터 과학자들은 전 세계에서 진행된 연구 5117건을 분석해 암과 당뇨, 비만, 심장질환 등 4만2723가지 치료 효과가 있는 독 정보를 저장한 세계 최대 데이터베이스 ‘베놈지식베이스(VenomKB)’를 구축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데이터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2200만건에 이르는 연구 문헌을 분석해 17만3000종의 독을 등록했다.

독은 아민과 아미노산, 펩티드, 단백질 등 여러 물질이 섞여서 생긴다. 단백질과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독소물질인 펩티드는 신경성 독으로 발열과 부종 등을 일으킨다. 하지만 독성을 잘 조절하면 통증을 줄이거나 암 세포를 공격하는 치료제로 바꿀 수 있어 과학자들에겐 매력적인 연구 대상이다. 살무사와 도마뱀, 무당개구리, 청자고둥의 독은 과학자 사이에선 인기를 끄는 ‘명품 독’으로 분류된다.

실제로 혈액응고방지제로 사용되는 아르빈은 1960년대 말레이 피트 살무사 독에 포함된 단백질인 앤크로드에서 발견됐다. 이 성분은 다리 혈전 치료제로 활용됐다.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혈당조절 주사제인 바이에타는 미국과 멕시코에 서식하는 큰 도마뱀 침에서 발견됐다. 주요 성분인 인크레틴은 밥을 먹을 때 사람 위에서 나오는 호르몬과 성분이 같다.

아열대 지역에 사는 청자고둥에서 나오는 지코노타이드라는 성분은 모르핀의 수천 배 이상의 진통 효과가 있다. 청자고둥은 이 독을 이용해 물고기를 마비시켜 잡아먹는다. 신경계를 통해 뇌로 전달되는 통증자극을 차단해 고통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에 사는 맹독성 뱀인 블랙맘바의 독이 만성 통증과 당뇨병, 심장 질환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전갈 독에서 발견된 단백질(TM-601)은 뇌종양 치료제로 활용될 전망이다.

물론 독을 잘못 쓰면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청자고둥에서 얻은 진통제는 진통 효과가 크지만 어지러움, 구토, 시력 저하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