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길 들어서는 미국·유럽 통화정책
유럽중앙은행(ECB)과 미국 중앙은행(Fed)의 엇갈리는 통화정책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새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ECB는 이미 마이너스인 금리를 더 떨어뜨려 경기 부양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Fed는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제로금리’를 택한 2008년 이후 7년 만에 금리인상에 나설 태세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와 재닛 옐런 Fed 의장의 엇갈린 선택이 임박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드라기 총재·옐런 의장, 선택 임박

다른 길 들어서는 미국·유럽 통화정책
ECB는 3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마이너스 금리폭 확대를 포함한 추가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드라기 총재가 12월 회의에서 강력한 부양책을 내놓겠다고 예고한 만큼 이번 회의에서 추가 조치가 나오지 않으면 금융시장의 실망감이 대단히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FT는 드라기 총재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으로 △양적 완화 기간 연장 △양적완화 규모 확대 △매입 대상 채권 추가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강력한 성명서 등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가장 강력한 카드는 금리 인하다. 투자분석가들은 현재 연 -0.2%인 예치금 금리를 -0.3~0.4%로 떨어뜨릴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FT는 드라기 총재가 0.1%에 머물러 있는 물가상승률을 목표치인 2%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어떤 일도 하겠다고 밝힌 만큼 추가 인하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현재 월 600억유로 수준인 채권매입 규모를 늘리면서 매입 대상을 국채나 자산담보부증권(ABS) 같은 안전자산 위주에서 벗어나 다양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 중앙은행(BOJ)처럼 상장지수펀드(ETF)나 부동산 매입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FT는 분석했다.

반면 Fed는 오는 15~16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짙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 노동부가 발표하는 11월 고용동향이 견조한 신규 일자리 증가와 낮은 실업률을 보여주면서 금리인상에 쐐기를 박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도 지난 29일 기준으로 12월 금리인상 가능성을 78%로 반영하는 등 금리인상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옐런 의장은 ECB의 통화정책회의가 열리는 3일 미 의회 상하원 합동 경제위원회 청문회에 나와 미국 경제 전망에 대해 밝힐 예정이다.

◆ECB 추가 양적 완화 부작용 우려도

WSJ는 ECB의 추가 양적 완화가 경기부양과 물가상승률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조치지만 마이너스 금리 확대가 득보다는 실이 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고 전했다. 기업의 투자 증가와 가계소비 확대라는 목표를 달성하기보다는 오히려 현금 보유 심리를 강하게 해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WSJ는 ECB가 지난해 마이너스 금리라는 정책 실험에 나섰지만 큰 효과를 얻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로열스코틀랜드은행 관계자는 “금리 인하가 유로화 약세를 통한 수출 증대에는 긍정적이지만 투자를 늘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과 덴마크, 스위스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 속하지 않는 유럽연합(EU) 국가들은 ECB의 금리인하가 자국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예치금 금리를 연 -1.10%까지 낮춘 스위스 중앙은행 관계자는 “ECB의 추가 금리인하가 부동산 거품에 기름을 부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도 ECB와의 정책 불일치로 유럽지역 수출이 감소하는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WSJ는 ECB와 Fed 간 금리 격차 확대로 외환시장이 요동치면서 최근 1년간 유로화 대비 12% 평가절상된 달러화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