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구사마 야요이 '호박'
일본 현대미술의 거장 구사마 야요이(86)는 열 살 때부터 물방울이나 그물망을 모티브로 그림을 즐겨 그려 ‘땡땡이 무늬의 화가’로 불린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심한 육체적 학대를 받아 환각 증세를 보였다. 1957년부터 1972년까지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도널드 저드, 앤디 워홀, 프랭크 스텔라 등과 교류했다. 1973년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강박증과 환영 증상에 시달려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2002년에 제작한 그의 ‘호박’ 연작은 삶의 희망에 대한 욕구를 ‘땡땡이 무늬’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 바탕의 호박에는 크기가 각기 다른 원형의 검은 물방울 반점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물망을 배경으로 검은 물방울무늬가 알알이 박힌 호박은 자신의 환각 증세를 관람객에게 미적 환상으로 되돌려준다. 그가 유독 호박을 그림의 소재로 활용한 까닭은 뭘까? 씨앗 판매 상점을 운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구사마는 어려서 홀로 꽃, 과일, 채소 등과 대화를 나누곤 했다고 한다. 그중에서 특히 호박을 좋아했다. 수수한 호박이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