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동의욕, 61개 조사대상국중 54위로 최하위권 수준

한국의 노동의욕이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낮다는 국제기관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최근 발표한 '2015 세계 인재 보고서'(IMD World Talent Report 2015)에서 한국의 직원 노동의욕은 최하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에 이에 대한 해석은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에서 '헝그리 정신'이 사라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공정한 노동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런 가운데 인재들은 좋은 일자리를 찾아 끊임없이 외국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은 두뇌 유출로 인한 국가 경쟁력 저하가 다른 나라들보다 우려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 노동자 의욕 61개국 중 54위
IMD가 61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은 '노동자 의욕'에서 54위에 그쳤다.

한국은 10점 만점에 4.64점으로, 슬로베니아, 아르헨티나 등과 더불어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이번 조사는 기업 임원 대상 설문을 통해 이뤄졌다.

가장 자발적으로 일한다는 평가를 받은 국가는 스위스(7.68점)였다.

이외에도 덴마크(7.66점), 노르웨이(7.46점) 등 북유럽 국가들이 그 뒤를 이었다.

일본은 7.06점으로 11위에 올랐다.

미국은 16위(6.71점), 중국이 25위(6.12점)였으며 인도는 42위(5.35점)였다.

한국과 순위가 비슷한 국가는 이탈리아(4.79점)와 러시아(4.77점), 슬로베니아(4.61점) 등이었다.

노동자 의욕이 가장 낮다는 평가를 받은 국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3.55점에 그쳤다.

한국의 노동자 의욕이 낮은 것으로 평가받은 데 대해 임상혁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헝그리 정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노동자 의욕 외에 기업가 정신도 부족하다면서 "선진국이 아닌데 선진국인 줄 안다.

경제가 어려운데도 불감증에 빠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성과에 대한 차등이 없는 연공서열적 임금체계도 문제라는 분석이 나왔다.

김동욱 한국경영자총협회 기획홍보본부장은 "근로 의욕이 낮은 것은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내는 직원이나 그렇지 않은 직원이나 보수에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금체계 외에도 '칼퇴근'을 부정적으로 보는 한국의 기업 문화도 문제라면서 "주어진 시간에 열심히 일하고 빨리 퇴근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이번 조사에 대해 "기업 임원 설문조사 결과라 경영자의 시각을 볼 수 있다"면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근로자를 도구적으로 보는 시각이 심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일하는 동기는 임금과 근로조건, 복지, 직장 분위기, 공정한 평가와 보상 등 여러가지에 영향을 받는다"면서 "근로 동기가 낮은 수준이라면 노동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본부장은 노동 의욕 순위에서 상위권인 스위스와 덴마크, 노르웨이 등에 대해 "유연하면서도 안정되고 공정한 노동 시스템이 작동하는 나라"라고 설명하면서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는 직장에서 헌신적으로 일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기업체 직원들은 상대적 박탈감이 크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 대기업 부장은 "젊은 사람들이 의욕을 상실했다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라면서 "건전하게 돈벌어 중산층으로 자리잡기 어려우니 금수저, 흙수저 같은 자조적 용어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의 대리급 직원은 "또래들을 보면 지방 중소기업에서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기 빠듯하니 의욕이 별로 없는 것 같다"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심한 것도 의욕을 떨어트리느니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 '두뇌 유출' 피해 61개국 중 17번째
기업 임원 대상 설문을 통한 이번 조사에서 한국의 두뇌 유출 지수는 3.98로 조사 대상 61개국 가운데 44번째로 높았다.

이 지수(0∼10)는 0에 가까울수록 외국에 나가서 일하는 인재가 많아 국가 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고 10에 가까울수록 인재가 고국에서 일하면서 경제에 보탬이 된다는 것이다.

즉 한국은 61개국 가운데 두뇌 유출로 인한 피해가 17번째로 크다는 의미다.

한국은 '숙련된 외국 인력의 유입'항목에서는 37위에 그쳤다.

2013년 기준 한국에서 해외로 나간 유학생은 14만4천명으로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 유학생(5만6천명)의 2.5배에 이르렀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의 김진용 박사는 "두뇌 유출 문제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들어오는 사람보다 나가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2012년 조사에서 미국 내 한국인 이공계 박사학위자 1천400명 가운데 미국 잔류 의사를 밝힌 사람은 60%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의 지난해 조사에서 고급두뇌의 해외진출 의향은 90% 이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해외 진학 또는 취업 이유로 선진지식 습득 외에 해외의 높은 연봉 수준 등을 꼽아 국내의 연구개발 수준과 처우가 상대적으로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의 연구개발 환경에서 취약한 부분으로는 폐쇄적인 조직문화(49%), 과도한 근무시간(44%), 불안정한 일자리(37%) 등을 꼽았다.

허대녕 기초과학연구원 전략정책팀장은 "고급 일자리가 없는 것이 문제"라면서 "기업과 연구소의 환경도 미국 같은 나라보다 너무 열악하다.

야근이 잦은데다 고용 불안도 심하다"고 말했다.

임상혁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고급 두뇌들이 일할만한 좋은 직장이 없는데,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야 한다"면서 "삼성전자 같은 회사가 5개쯤 된다면 인도나 중국에서도 인재가 많이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각국은 고급 두뇌 확보를 위한 정책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세계의 '인재 블랙홀'인 미국은 전문직 취업비자와 고학력 취업이민 영주권 쿼터를 늘리는 등 전문인력 유입 원활화를 위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적인 학자와 교수 1천명을 유치하는 이른바 '천인계획'을 비롯한 파격적인 정책을 펴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세계 명문대학 캠퍼스 유치, 해외고급인력 입국지원 등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두뇌 유출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외국으로 나갔더라도 나중에 국내로 복귀하거나 외국체류 중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모국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허대녕 팀장은 "최근에는 두뇌유출보다 두뇌순환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면서 "외국으로 나갔다가 안 들어오는 사람도 있지만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두뇌 유출에 따른 피해가 가장 적은 국가는 8.27점을 받은 노르웨이였으며 스위스(7.56점), 핀란드(6.83점), 스웨덴(6.82점) 등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세계 인재들이 몰려드는 미국 역시 6.82점을 얻어 공동 4위에 올랐다.

인도는 4.87점으로 29위였으며 일본은 4.49점, 중국은 4.07점을 받아 각각 34위와 41위로 조사됐다.

두뇌 유출 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는 베네수엘라와 헝가리였다.

이들 나라는 모두 1.71점으로 61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재정위기를 겪은 포르투갈(3.67점), 스페인(3.57점), 그리스(3.42점) 등이 하위권에 들었다.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김경윤 기자 kimy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