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진영 논리에 갇힌 과격 시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도의 ‘2차 민중총궐기’가 곧(12월5일) 열린다고 한다. 파리 테러의 공포가 언론을 통해 한국을 강타했던 그날(11월14일) 오후의 재탕이 될까 봐 벌써부터 두렵다. 그날은 서울 주요 대학의 논술고사 날이었던 데다 파리 테러 여파도 있고 해서 시위대가 자제할 줄 알았다.

'획일주의'가 사람 잡고 나라 망친다
그러나 기대와는 다른 일이 벌어졌다. 오죽했으면 길거리로 나왔겠는가. 시위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의 심정을 애써 헤아려보다가 그만 무색해졌다.

보도블록을 깨고, 새총을 쏘고, 쇠파이프를 휘둘러 경찰 버스를 부수고 밧줄로 묶어 끌어당기는 행위는 ‘평화’도 ‘민주’도 아니었다. ‘민생’도 실종됐다. 왜 광화문에 모였는가. 파괴와 폭력 행사가 목표 그 자체였던가. 서울 도심은 ‘평화적’ ‘민중 시위’로 도시 기능을 잃고 무법천지가 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자 논점이 방향을 틀고 있다. 경찰의 과잉 진압? 살수차의 규정 위반? 또 한 명의 의인 탄생? 등으로 말이다. 아, 그렇구나. 이런 문제 제기로 또 종전처럼 본질이 흐려지고 불법은 감춰지는 거구나!
'획일주의'가 사람 잡고 나라 망친다
시위대의 폭력성과 경찰의 허술한 진압 태세를 보면서 불길한 상상까지 들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이슬람국가(IS)’ 같은 테러단이 잠입해 분탕을 친다면? 혹은 전 경찰력이 시위대를 막느라 정신없을 때 전혀 엉뚱한 곳에서 테러나 폭발이 일어난다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IS는 이미 한국을 ‘십자군 동맹국가’에 포함시켰고, 한국처럼 공권력이 맥을 못 추고 보안과 대처가 허술한 나라가 없다는 것은 알려진 비밀 아닌가.

대한민국은 시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다. 동시에 개인의 자유가 타인이나 집단에 의해 침해받지 않을 권리도 보장돼야 한다. 시간적·정신적 피해를 본 수험생과 학부모, 불안과 공포에 떤 행인과 관광객, 생업을 망친 주변 상인들에게 시위대는 무슨 변명, 어떤 보상을 할 수 있겠는가. 평화적 집회를 약속하고 한 번도 지키지 않은 이유는? 훼손된 국가 이미지는? ‘사회적 약자’면 법을 안 지키고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말인가. 그런 이는 이미 약자가 아니라 강자다. 초법적·탈법적 행위를 못 하도록 막는 것이 민주 사회의 정의다. 불법을 용납하면 민주가 아니고, 정의는 폭력으로 쟁취할 수 없다. 대의(大義)를 말하면서 소리(小利)를 추구하고 집단 이기에 매몰하는 뻔뻔스러움이 사라질 때 비로소 민주시민이 되는 것이다.

규정과 절차를 지키는 적법 시위만으로도 얼마든지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다. 시위자들이 설득력과 공감대를 얻으려면 이제라도 과격 폭력을 사과하고 주동자는 자수해 법정에 서야 한다.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만 옳고, 나를 비판하는 사람은 모두 수구반동 내지는 적대 세력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아닌가. 획일화된 사고와 이중적 잣대로 시대를 뒷걸음질칠 것인가. 독선과 폭력은 법치 국가의 적이다. 조직 보호와 진영 논리에 빠져 과격 행동을 일삼는 근본주의자들의 말로가 어땠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운동권 내부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이제는 나와야 한다. 그것이 참운동권의 방향이다. 다음번 집회는 문자 그대로 평화적으로 하면서 정치가 아니라 민생을 말하길 바란다.

◆'5년 시한부' 면세점 사업

같은 날 우리는 또 하나의 참사를 겪었다. 버젓이 영업하던 대형 면세점 두 곳이 심사에서 탈락해 허가가 취소되고 새로운 사업자가 선정됐다. 구체적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시중에서는 재벌끼리의 땅따먹기 싸움이나 서바이벌 게임처럼 보기도 했다. 강 건너 불구경 하던 일부 언론도 면세점에 이어 통신용 주파수, 방송, 홈쇼핑 같은 초대형 사업체의 인허가권 심사가 임박하자 이제 그 심각성을 느끼는 듯하다.

이 사태는 돈 있는 사람들의 호사로 넘기기엔 너무나 충격적이고 파장이 크다. 한 업체의 경우 면세점 시설비로 5000억원이 넘게 들고 약 1300명의 직접 고용에 간접 고용까지 포함하면 관련 종사자가 3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연매출도 5000억원에 가까운 엄청난 이권 사업이다. 이런 기업을 단 한 번의 밀실 심사로 탈락시키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나는 그동안 운동권이나 시위대가 ‘독재 정권’ ‘독재 타도’를 외칠 때마다 저렇게 대놓고 ‘독재’를 부르짖는 걸 보니 한국은 역설적으로 자유가 보장된 나라가 틀림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진짜 독재 국가에선 독재란 말을 함부로 못 꺼내기 때문이다. 나는 두부모 자르듯 면세점을 퇴출시키는 대담한 관료들을 보면서 대한민국이 관료 독재 시대로 돌아가지 않았나, 깊은 충격을 받았다. ‘높으신’ 담당 공무원이 발표하기 직전까지 기업은 자기가 죽는지 사는지도 모른다. 졸지에 ‘사형 선고’를 받고 억울했을 해당 기업의 그 누구도 항변 한마디 못하니, 독재 국가가 아니라면 있기 힘든 일이다.
'획일주의'가 사람 잡고 나라 망친다
대통령은 입만 열면 ‘일자리 창출’과 ‘규제 완화’를 외쳐왔건만, 이번의 ‘밀실 참사’야말로 거기에 가장 역행하는 짓이 아니고 무엇인가. 대통령이 강조한 이런 ‘암 덩어리’ 규제를 꽉 움켜쥔 채 기업을 쥐락펴락하다니…! 공무원이야말로 갑(甲) 중에 갑,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인 중국보다도 한참 뒤떨어지고 개발독재 시대에나 통했던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관광 인프라와 소프트웨어가 취약해 외국 관광객 유치를 시내면세점이란 한국적 노하우로 성공시킨 나라 아닌가. 이 모델을 벤치마킹해 이제 중국 일본 미국도 더 크고 더 편리한 면세점 설치에 주력하고 있다. 서비스업은 단기간에 승부를 내기 힘든 대표 업종이건만, 수십년 쌓은 명성과 신뢰와 노하우를 종이 한 장으로 하루아침에 짓밟아 버렸다. 새 사업자인들 5년 뒤면 또 생사를 단칼에 심판받아야 할 처지인데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설비 투자며 정밀한 유통·보관 체계, 차별화한 고객 관리가 이뤄지겠는가. 무엇보다 면세점의 키를 쥔 세계적 브랜드 메이커들이 이런 횡포를 벌이는 정부 밑에서 꼼짝 못하는 기업에 뭘 믿고 과감한 투자, 안정적인 공급을 하겠는가. 글로벌 경쟁 시대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는 관료라면 이런 행태를 보일 수 없다.

나는 면세점 허가 취소가 장관급도 아닌 차관급이 기관장인 외청 단독으로 이뤄진 ‘고독한 결단’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그런 ‘과감하고 몰(沒)역사적 결단’을 내린 분들에게 이런 나의 상식을 전해주고 싶다.

기업이 경영을 엉망으로 하거나, 시장경제에 반하는 짓을 하거나, 불법·탈세를 저지르거나, 부도덕한 행위를 하면 퇴출돼야 한다. 단, 엄격한 시장 논리와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국회가 법을 엉터리로 만들어 어쩔 수 없었다고? 일리는 있지만 변명에 불과하다. 잘못된 법을 핑계 삼아 마구잡이로 권한을 휘둘러댄 것이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최고 엘리트 집단인 관료마저 집단 이기주의와 권위주의에 마취돼 버린다면 정말 슬픈 나라가 되고 만다.

◆교과서에도 편가르기라니…

하나만 더 언급하자. 국정 교과서 반대에 전교조가 연가 투쟁으로 나선단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형태의 반대 투쟁이 여러 유사 단체로부터 나올 것 같다. 선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교과서를 국정화하지 않는다. 우리야 학창 시절 국정 교과서로 배우며 자란 세대지만 21세기에 웬 국정 교과서냐 말이다. 국정화는 추진 과정부터가 성급했고 잘못된 면이 없지 않다. 여론도 지지세가 약한 편이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의 주장과 행동을 지켜보면 오히려 이래서 국정화를 하자는가 보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곤 한다.

지금의 검인정 교과서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그래서 차제에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줄 제대로 된 논의가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양측의 신념이 워낙 강해서인지 아니면 흑백논리에 빠져서인지, 국정화냐 검인정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양보 없는 싸움만 벌이고 있다. 유감스럽고 아쉽다.

외형적으로는 정부가 세(勢) 싸움에서 밀린다. 수많은 대학과 역사 관련 학회에서 단체로 국정화 반대 서명을 하고 집필 거부를 선언했다. 국정화 대표집필 예정 교수는 집단 공격을 받고 구설에 휘말려 중도 사퇴했다. 어렵게 구성한 집필진 명단도 신상 털기가 두려워 공개하지 못한다. 국정화 작업할 시간도 많지 않고 연구진도 폭이 좁다. 지지세 또한 약해서 이대로라면 제대로 된 역사 교과서가 나올지 걱정도 된다. 국정화란 획일화에 맞서는 또 하나의 일률적 반대 목소리를 매일같이 들으며 한국 지성 사회에 우려를 전하려 한다.
'획일주의'가 사람 잡고 나라 망친다
학문으로서의 역사는 다양한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은 당연하다. 획일화 반대 주장에도 전적으로 찬성이다. 그런데 검인정 교과서가 여럿 나오고 많은 분이 집필에 참여했지만, 역사관과 서술 방향, 그리고 다루는 비중에 차별성이 없다면 이 또한 획일화된 일방적 역사 교육이 아니겠는가. 그것도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져 이뤄낸 우리 현대사를 자랑스럽게 우리 청소년 가슴에 담게 하는 한국사가 아니라면 말이다.

지금 한 쪽에선 현행 검인정 교과서가 사회주의적 역사관과 북한 정권을 정당화한다며 문제점을 지적하는 반면, 다른 쪽에선 국정화를 하면 친일 독재 정권을 미화하는 교과서가 된다며 반대한다. 한 쪽은 이미 나온 검인정 교과서를, 다른 쪽은 앞으로 나올 국정 교과서를 미리 비판한다. 한 쪽은 내용을, 다른 쪽은 형식을 문제 삼는다. 서로 귀를 막은 채 입만 열어 남의 말은 안 듣고 자기 말만 하는 희한한 싸움이다.

나는 일각의 제기처럼, 검인정 교과서를 통한 엄청난 집필료 수입 때문에 국정화를 반대한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현행 검인정 교과서의 내용에 대해선 명확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 학문의 자유란 이름으로 잘못된 역사관을 어린 학생들에게 주입시켜선 안 된다. 그 많은 검인정 필자 가운데서 현행 역사 교과서의 내용과 시각에 분명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반성한 사람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정부와 상당수 학자·국민이 그렇게 문제가 많은 교과서라 하는데도 꿈쩍 안 한다. 정말 현행 역사 교과서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작성됐단 말인가. 수백명의 집필자가 획일화와 다양성 말살을 국정화의 폐해로 내세우며 반대만 할 뿐 자성의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 것은 건강한 지성의 모습이 아니다.

아무리 어리석은 정부라도 시대의 추세나 선진 민주국가들이 국정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이런 ‘무리수’를 쓴다는 말인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책이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국민 정서에 용납되고 학교에서 채택할 거라고 생각해서 반대하는가. 우리 수준과 민도가 그렇게나 낮다는 말인가. 반대론자들이 자기 순결성의 우물에 빠진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남을 무시하고 다른 생각을 용납하지 않는 폐쇄성은 교과서 국정화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일부) 국민의 우려까지 감안해 양식과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제대로 된 역사 교과서를 다시 만들겠으니 제발 국정화만은 말아 달라”고 하면 그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인가. 국민을 설득할 방법을 몰라서 자기 논리만 강변하는 것일까. 한국 최고 지성마저 조직 논리와 기득권에 빠져 획일화돼 버리지나 않았나, 심히 걱정되고 의아스럽다.

그렇게나 획일화를 배척하고 다양성을 추구한다면서 왜 교학사판 역사 교과서는 한사코 반대해 단 한 학교도 채택하지 못하게 만들었는가. 그 교과서는 ‘친일 독재’로 낙인 찍으면서 이 교과서의 이념 편향을 문제 삼으면 색깔론으로 매도해 버린다. ‘순수’와 ‘학문’은 뒷전으로 밀리고 고도의 ‘정략’과 ‘전투’가 판을 몰아가는 교과서 논쟁에 섬뜩해진다.

의인 10명이 없어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했다는데, 검인정 필자 중 다른 목소리를 내는 3명이라도 있다면 그분들의 고뇌와 다양성을 이해하겠다. 역사는 역사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한국사는 국사학자들이 독점할 사안도 아니다. 벼리고 보듬고 가야 할 역사를, 버리고 누르면 안 된다. 집단 이기주의와 진영 논리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학자는 외면당하고 역사는 퇴보한다. 하루 빨리 획일화의 틀에서 벗어나자.

김형오 객원大기자는

△ 1947년 경남 고성 출생 △ 경남고,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 경남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기자 △대통령 비서실
△14~18대 국회의원(부산 영도) △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 △국회의장 △부산대 석좌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