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UN 사무총장의 방북이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노코멘트로 일관하던 UN도 최근 대변인을 통해 “방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공식 확인했다. 시기와 내용 결정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도 국내 언론에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 방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날짜를 조율 중인데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UN 사무총장은 세계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와도 만날 수 있다. 북한도 김정은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다만 UN을 대표하는 막중한 자리인 만큼 모든 만남에는 분명한 목적과 명분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상대는 국제사회에서 범죄적 집단으로 간주되는 북한이다. 바로 그 때문에 반 총장의 방북을 둘러싸고 뭔가 석연치 않은 의문점들도 생겨난다.

우선 목적 자체가 분명치 않다. 과거에도 두 차례 UN 사무총장이 방북한 적이 있다. 남북 대치가 한창이던 1979년,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1993년으로 당시에는 모두 현안 논의라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르다. UN 대변인은 지난 18일 “반 총장은 한반도의 대화를 촉진하고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기 위해 방북을 포함해 기꺼이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고 말했다. 이 모호한 표현으로는 방북 이유를 알기 힘들다.

시기상으로도 적절치 않다. UN은 지난 20일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북한 인권 상황을 규탄하고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UN이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11번째지만 이번처럼 책임자를 ICC에 세우라고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북이 과연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차기 대권주자로 떠오르는 반 총장의 ‘과시용’으로 보기도 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위험한 생각이다. 만약 김정은과 사진이나 몇 장 찍고 끝낸다면 자칫 UN이 지난 20일의 결의안과는 달리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해주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전 세계가 보고 있다. 좀 더 신중하고 명확한 태도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