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경제 자유 옥죄는 법의 위기
오호통재라! 최근 대법원 판결로 대형마트 영업 규제가 마침내 ‘법(法)’이라는 탈을 쓰고 등장하게 됐다. 골목상권 보호가 ‘중대한 공익’이라는 논거에서 대형마트 영업을 규제하는 게 정당하다는 논리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환경의 위기, 에너지 위기, 경제·민주주의 위기 등 위기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정작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위기를 말하지 않는 분야가 있는데 그게 바로 법 분야이기 때문이다. 법의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법학계가 야속할 따름이다.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보라. 어떤 실익도 없이 소비자의 희생과 중소납품업체의 눈물만 강요하는 것을 법이라고 말한다. 호텔도 못 짓게 하는 규제, 한시적 면세점 면허제, 투자도 가로막는 경제민주화법 등 시장 구석구석을 규제하고 경제생활의 발목을 잡는 게 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쯤에서만 봐도 위기에 빠진 게 법이 아닌가. 법이 개인의 행동을 길잡이 하는 숭고한 일반준칙이 아니라 성장, 분배, 복지 등 집단의 목적과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경제적 자유를 짓밟고 있다.

원래 법이란 집단의 목적·이익과 독립적이다. 기업과 개인에 대한 차별도 특혜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성격의 법이 법다운 법이요, 시장경제의 기초인 ‘사법(私法)’을 구성한다. 사법의 테두리 내에서 개인은 자유로이 자신의 사적 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 시장이 빈곤·실업·성장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도 사법 덕택이라는 걸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사법이 무너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공법(公法)이 급증한 탓이다.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우고 공익이라는 명분으로 집단의 목적과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게 공법이다. 물론 공법은 필요하다. 자유·재산·계약 보호를 위해 사법을 강제하고 집행할 행정·사법기관의 조직을 위해서다. 그러나 사적 제도로는 소망스런 결말 상황을 만들 수 없다는 선험적 이유로 재산 수용, 영업·가격 규제를 요구하는 공법은 사적 영역의 침범이다.

흥미로운 건 그런 위기의 원인이다. 법이란 입법자가 집단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계획해 제정한 것이라고 믿는 법사상이 주범이다. 법을 평가할 도덕적 잣대도 없다. 입법자가 정한 것이면 그것이 정의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법의 계획사상을 부추겨 사법을 시들게 하는 공범은 공법학이다. 입법을 통해 이상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지적 자만을 전제하는 것도 위험하다. 공법학에 못지않게 사법을 쇠퇴시키는 데 기여한 게 사법학자 스스로라는 걸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사법학자들은 시장실패라는 잘못된 개념으로 시장을 오해한 나머지 자신의 연구 분야인 사법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위기의 주범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의회의 주권론과 다수결 민주주의의 결합이라는 것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그 결합의 치명적 결과가 법의 내용이 어떻든 국회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으면 무엇이든 법이라는 무제한의 입법권이다. 이게 국회에서 법 같지도 않은 법이 양산되는 이유다.

위기의 결과는 치명적이다. 시민과 시민의 재산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상실되는 건 개인의 존엄성이요 기업가 정신이다. 법의 품위와 권위도 상실돼 법을 경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된다. 사법의 위기는 사회를 떠받치는 정의도 파괴해 평화와 안정, 번영이 흔들린다. 한국 경제가 빈곤, 고실업, 저성장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유도 법의 위기 때문이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입법·사법부가 스스로 경제적 자유를 보호하리라고 믿을 수는 없다. 그들은 경제적 자유는 모든 자유의 보루인데도 불구하고 언론, 결사, 사상 등 시민적 자유가 우선한다는 이유로 경제적 자유를 홀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의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적 자유를 보호할 최선의 길은 자유주의의 거성 하이에크와 뷰캐넌이 보여주고 있듯이 입법·사법부의 권력을 제한하는 자유의 헌법이다. 이게 저성장의 질곡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번영으로 가는 길이다.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kwumin@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