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와 리에 "니나가와 작품 출연하며 제 삶도 풍부해졌죠"
소년 카프카가 유리상자로 이뤄진 거대한 숲 속을 헤맨다. 엄마를 찾기 위해서다. 카프카는 자신의 엄마라고 생각했던 사에키를 다시 만난다. “곧 숲의 입구가 닫힐 거야. 이제 네 세상으로 돌아가렴. 단 한 가지, 날 기억해줘. 너만 나를 기억해준다면, 다른 모든 사람이 날 잊어도 좋아….” 사에키는 이 말을 남기고 숲 속으로 사라진다.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24일 막이 오른 연극 ‘해변의 카프카’의 마지막 장면. 신비로운 여인 사에키 역을 맡은 ‘일본 국민 여배우’ 미야자와 리에(43·사진)의 절제된 연기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연극은 일본을 대표하는 연극계 거장 니나가와 유키오가 연출했다. 이날 공연 전 LG아트센터에서 만난 리에는 “한국 관객들이 ‘신비로운 체험’을 함께 느끼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80년대 최고 아이돌 스타로 군림한 미야자와는 18세에 발간한 사진집 ‘산타페’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최근 한국에서도 개봉한 영화 ‘종이달’에서 평범했던 주부가 거액의 횡령 사건의 주인공이 되는 과정을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기로 표현해 올해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주연상, 도쿄국제영화제 최우수 여우주연상 등을 휩쓸었다.

미야자와는 “하루키의 작품은 굉장히 철학적이어서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며 “10대 때 읽는 것과 40대가 되고 난 후 읽는 것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작품을 보다 자유롭게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품 제목에 등장하는 ‘해변’은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를 상징하는 것 같아요. 사에키를 연기하다 보면 생(生)과 사(死)의 경계를 향해 끝까지 밀려가는 파도 같은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인지 이 연극에 출연하면서 제 인생이 더욱 깊어지고, 풍부해졌습니다.”

미야자와는 2012년 ‘시타야 만넨초 이야기’를 시작으로 ‘맹도견’ 등의 연극에서 니나가와와 호흡을 맞췄다. 그는 “신비로운 하루키의 작품을 니나가와 연출 특유의 무대 기법을 동원해 훌륭하게 구현해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해변의 카프카’는 15세 소년의 고통스러운 성장기를 담은 작품이다. 그의 인생에서 ‘성장’이란 어떤 의미일까.

“카프카는 여러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성장해 나갑니다. 좋든 싫든 만남은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죠. 제 인생에서 저를 가장 성장하게 한 것은 니나가와 연출과의 만남이에요. 그를 만나고 제 인생은 훨씬 더 다채롭고 풍부하게 바뀌었습니다. 지병 때문에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는데, 니나가와의 마음을 담아 무대에서 보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