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빛 바다와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백사장이 아름다운 꼬딸루.김남용 myjiminstory@naver.com 제공
에메랄드빛 바다와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백사장이 아름다운 꼬딸루.김남용 myjiminstory@naver.com 제공
‘이러다 배가 뒤집히는 거 아닌가?’ 해안을 떠난 모터보트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았다. 1m라고 했다. 쾅, 쾅 선체를 때리는 굉음이 들렸다.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선장이 엔진을 껐다. 잠시 물결을 타더니 뱃머리를 쳐들며 다시 출발했다. 해상 롤러코스터였다. 5분 정도 고개도 들지 못했다. 세찬 바닷바람이 머리를 때렸다. 뱃전을 넘은 물보라가 목덜미를 적셨다. 그렇게 15분, 선착장에 닿자 검게 그을린 젊은이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손을 내밀었다. 드디어 꼬딸루다.

에메랄드빛 바다 태국만(灣)의 섬

때묻지 않은 태국만(灣)…바다거북의 고향 꼬딸루
초가지붕의 목조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빨갛게 익은 몸통을 드러낸 채 서양인 몇몇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뷔페식으로 차려진 대여섯 가지 태국 요리에 눈길이 쏠렸다. 고소한 게살 볶음밥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디저트로는 바나나 튀김을 골랐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 입안에서 달콤하게 녹았다. 자동 커피 머신에서 한 컵 가득 아메리카노를 뽑아들고 백사장으로 나섰다. 산호가 부서져 생겼다는 모래가 마치 밀가루 같았다. 300m의 흰 캔버스에 야자수가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해수욕객은 보이지 않고 드문드문 놓인 베드가 홀로 몸을 말리고 있었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져 구르고 새털구름이 높이 흘러갔다. 에메랄드빛 바다에 햇살이 반짝였다.

꼬딸루는 섬(꼬)에 구멍(딸루)이 있다는 뜻이다. 서쪽 해안의 해식(海蝕)동굴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남북 2㎞, 면적 1.6㎢로 태국 중부 쁘라쭈업키리칸의 방사판 지역에 속한다.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한 어업 탓에 해양 환경이 훼손됐던 아픈 과거가 있다. 왕실 휴양지로 유명한 후아힌에서 차로 2시간가량 걸린다. 현지인들에겐 생태관광과 해양 스포츠 명소로 꼽힌다. 후아힌의 고급 호텔에서 휴식을 즐긴 뒤 호핑투어 삼아 하루 이틀 일정으로 다녀올 수 있다. 방갈로 62실 규모의 소박한 리조트가 여행객을 맞는다. 주인은 20여년 전부터 환경 보전에 힘써온 어부 출신이다. 지금은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산호 복원과 바다거북 보호 활동을 이끌고 있다.
‘거북이 탁아소’ 관리인이 새끼 바다거북을 들어보이고 있다
‘거북이 탁아소’ 관리인이 새끼 바다거북을 들어보이고 있다
바다거북의 고향

때묻지 않은 태국만(灣)…바다거북의 고향 꼬딸루
산호 심기는 간단했다. 둥근 관에 산호 조각을 넣고 나사로 조인다. 10여개의 관을 지지대에 고정시켜 바닷속으로 내려보내면 끝이다. 파도와 세월이 그 생명체를 키운다. 해양 생태계가 복원되면서 멸종 위기의 바다거북도 꼬딸루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리조트에선 ‘거북이 탁아소’를 만들었다. 알이 부화하면 성장 단계별로 수조에 넣어 보살핀다. 6개월쯤 기른 후 왕의 탄신일 등 특별한 날에 맞춰 바다로 돌려보낸다.

리조트 측이 암컷 한 마리를 방생하는 기회를 줬다. 거북이의 크기를 재고, 주사기로 추적용 마이크로칩을 몸통에 심었다. 서류에 이름을 적으라고 했다. ‘한국’이라고 썼다가 곧바로 ‘태국’으로 고쳤다. 이 여린 생명은 대양(大洋)으로 나가 성장해서 태국만으로 돌아와야 한다.

어른 머리통만 한 새끼 거북이를 받았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파닥파닥 앞발을 움직이며 빠져나가려고 했다. “이놈아, 기념사진은 찍어야지.” 조심스레 백사장에 놓았다. 곧장 바다로 달려갈 줄 알았는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돌아올 곳을 머릿속에 새기는 중이라고 했다. 1분여 동안 그렇게 엎드려 있다가 후다닥 튀어 나갔다. 파도에 몸을 싣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동안 태국이의 흔적을 좇다 연한 녹색 바닷속이 궁금해졌다. 간단한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뛰어들었다. 아쉽게도 소나기가 쏟아졌다. 햇살이 물속을 비춰주지 않으니 시야가 밝지 않았다. 사방이 산호 밭이었다. 해초는 많지 않았다. 작은 물고기가 떼를 지어 움직였다. 손을 뻗으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색깔이 화려한 열대어들의 군무는 볼 수 없었다. 구름이 짙어지며 물속이 더 어두워졌다. 몸을 뒤집어 배영 자세로 하늘을 보고 누웠다. 빗방울이 얼굴에 떨어졌지만 부력과 따뜻한 수온이 근육에 쌓인 긴장을 풀어줬다.
갓 잡은 오징어를 굽고 있는 꼬딸루 리조트 직원
갓 잡은 오징어를 굽고 있는 꼬딸루 리조트 직원
마음까지 물들이는 석양

바다에서 나오니 길이 20m, 폭 4m 정도의 뗏목이 기다리고 있었다. 배 뒤쪽의 엔진 두 개가 으르렁댔다. 오징어를 잡으러 간다고 했다. 즉석에서 구워 먹을 수 있게 사각형 화로도 실렸다. 도넛 모양의 플라스틱 낚시 도구를 받았다. 감겨 있는 낚싯줄을 풀어주고 간간이 힘껏 당기라고 했다. 10여분이 지나도록 입질을 느낄 수 없었다. 슬슬 지루해졌다.

“야, 크다.” 일행 중 한 명이 어른 팔뚝 크기의 오징어를 끌어올렸다. 사진을 찍느라 시끌벅적한데 이놈이 갑자기 물을 내뿜었다. 서너 차례 소란을 피우더니 조용해졌다. ‘한 마리 건져야지.’ 물속을 뚫어지게 노려보는데 누가 접시를 쑥 내밀었다. 오징어구이였다. 오물오물 씹으며 눈을 들었다.

태국만에 해가 지고 있었다. 벌겋게 물든 수평선에 푸른빛이 감돌더니 안개가 번지듯 어두워졌다. 저 멀리 어선들의 집어등이 희미하게 빛났다. 배가 섬으로 돌아가기 위해 크게 반원을 그리며 선회했다. 뱃머리가 출렁댔고 그 리듬에 맞춰 가슴속이 흔들렸다. 어둠이 짙어지고 별이 떴다. 반짝, 섬 하나가 마음 속에 들어왔다. 만년의 파도와 천년의 바람이 거북이와 산호를 키워주는 곳. 따뜻한 물결이 등을 어루만져주던 작은 섬. 종종걸음치는 출근길, 어깨 처진 퇴근길에 문뜩 떠오를 그 이름. 안녕. 쩌 깐 마이나, 꼬딸루.

꼬딸루=고호진 기자 g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