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1500원 라면, ‘짜왕’은 되고 ‘신라면 블랙’은 안 되는 이유?
[ 김아름 기자 ] 농심 짜왕을 필두로 한 1500원대 라면이 라면 시장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4년 전 프리미엄 라면을 선언했던 신라면 블랙이 가격 저항에 부딪히며 논란을 만들다가 결국 생산을 중단했던 것과는 다른 풍경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출시된 '프리미엄 짬뽕라면'인 농심의 맛짬뽕과 삼양식품 갓짬뽕은 모두 소비자가격을 1500원으로 책정했다. 앞서 출시된 오뚜기 진짬뽕, 팔도 불짬뽕과 같은 가격이다.

5월 출시된 프리미엄 짜장라면 짜왕이 가격을 1500원으로 책정한 이후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 경쟁사들도 일제히 1500원짜리 프리미엄 짜장라면들을 출시했다. 짬뽕라면에서도 1500원대 가격 책정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짜왕의 성공 이후 프리미엄 라면의 가격 기준선이 1500원으로 제시된 셈이다.

1500원대 프리미엄 라면 시장은 이제 전체 라면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짜왕은 출시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월 매출 100억원 이상을 올리며 신라면에 이은 ‘라면 2위’를 지키고 있다. 진짬뽕도 출시 1개월 만에 300만개 판매를 달성하며 반격에 나섰다.

신라면 블랙 논란으로부터 4년 만에 소비자들의 반응이 180도로 바뀐 것이다.

2011년 3월 출시된 신라면 블랙의 가격은 짜왕 등과 불과 100원 차이인 1600원이었다. 출시 5개월 후인 2011년 8월 1450원으로 가격을 인하했고 재출시 뒤에는 짜왕과 같은 1500원으로 소비자가격을 결정했다.

신라면 블랙은 출시되자마자 가격 논란, 과장광고 논란에 휩싸였다. 기존 신라면(780원)보다 배 이상 비싼 가격과 '설렁탕 한 그릇의 영양을 담았다'는 광고가 문제였다. 결국 공정위에게 1억5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고 생산도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신라면 블랙은 1년 후인 2012년 10월에야 재출시될 수 있었다.

업계는 농심이 신라면 블랙의 논란을 교훈삼아 저항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마케팅을 펼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신라면 블랙이 ‘신라면’이라는 브랜드를 그대로 쓰면서 가격을 올려 반발을 산 반면 짜왕은 짜파게티의 연장선상에 있는 제품이지만 아예 다른 브랜드명으로 전작과 연계하지 않았다. 신규 브랜드이니만큼 소비자들이 기존 제품과 가격을 비교하기보다는 순수하게 맛을 평가해 가치를 매기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신라면 블랙은 브랜드명을 유지함으로써 기존 신라면과의 가격 비교를 피할 수 없었다. 실제 출시 직후 '우골스프를 추가하고 가격을 배로 올렸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여기에 기존 신라면을 단종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면서 어려움에 처했다.

농심 관계자는 "신라면이라는 브랜드를 공유한 것 자체가 실패라고 보지는 않는다"면서 "논란이 있었던 2011년에도 매출이 잘 나왔고 미국 등에서도 인기가 많아 국내에서도 다시 선보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프리미엄 라면'은 맛에서도 확실한 차별화를 이뤘다. 짜왕은 굵은 면발, 새로운 맛의 스프 등으로 짜파게티와 전혀 다른 맛을 구현했다. 맛짬뽕도 국내 최초로 '굴곡면'을 선보이며 초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소비자들이 맛에서 1500원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높은 가격에도 불만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라면 블랙이 '우골보양식' 콘셉트로 맛보다는 영양에 초점을 뒀다가 실패한 것과 달리 '새로운 맛'에만 집중한 것이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한 라면업계 관계자는 “짜왕이나 신라면 블랙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생각해 보면 1500원이 비싸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단순히 재료비와 가격을 비교하는 것이 아닌,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와 만족감을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아름 한경닷컴 기자 armij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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