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말이다. 원래 선조들은 건축 대신 영조(營造)라는 말을 썼다. 가꾸어 짓는다는 뜻이다. 땅을 읽어 터를 잡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한국 전통 건축의 정신이다. 이런 가치를 되돌아보는 전시가 열린다. 오는 19일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는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전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사진 24점, 영상 14편, 고미술 작품 17점, 조형물 8점 등 70여점이 나온다. 한국 전통 건축물 10곳을 현대 작가들이 사진과 영상, 조형물로 표현하고 그 옆에 옛 미술작품과 사료를 전시했다.

사진작가 주명덕의 ‘해인사’.
사진작가 주명덕의 ‘해인사’.
셋으로 나뉜 전시장은 각각 선조들의 천지인(天地人) 철학을 보여준다. ‘침묵과 장엄의 세계’는 한국의 전통 우주관과 세계관을 다룬다. 해인사 불국사 통도사 선암사 등 불교 사찰과 조선시대 왕실 사당인 종묘를 조명한다. 각각 불교와 유교의 정신문화를 대변하는 건물이다. 기록사진 대가인 주명덕 씨는 가야산 해인사의 비경과 성철 스님 등 승려들의 수행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문화재 전문 사진가로 활동하는 서헌강 씨는 사진으로 석굴암의 장엄함을 보여준다.

‘터의 경영, 질서의 건축’은 궁궐 성곽 관아 등 사회적 공간으로 활용된 건축물을 조망한다. 도입부에는 ‘동국대지도’와 ‘한양도성도’를 전시해 건물이 들어설 터부터 시작한 전통건축의 철학을 보여준다. 사진작가 배병우 씨는 창덕궁의 겨울 풍경을 수묵화 같은 명도의 사진에 담아 주변 나무와 어우러진 건물의 단정한 선을 부각했다. 김재경 작가가 찍은 21세기 수원 화성의 낮밤 모습은 수원 화성 복원 과정에서 자료로 쓰인 18세기 말의 ‘화성의궤’ ‘화성능행도’와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팔달문 복원과정을 보여주는 3차원(3D) 영상도 볼 수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오는 19일 개막하는 ‘땅의 깨달음’전에 출품된 김도균의 ‘도산서원’.
삼성미술관 리움이 오는 19일 개막하는 ‘땅의 깨달음’전에 출품된 김도균의 ‘도산서원’.
하늘과 땅에 이어 사람을 부각하는 공간은 민가와 서원, 정원이다. ‘삶과 어울림의 공간’ 전시장은 경주 양동마을과 안동 도산서원, 담양 소쇄원을 다룬다. 사진작가 구본창 씨는 계곡으로 둘러싸인 소쇄원의 대나무밭 풍경으로 자연과 건물의 조화를 보여준다. 김도균 사진작가는 도산서원의 고요하고 정갈한 건축미를 포착했다.

전시는 현대 기술을 이용해 전통건축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3D 스캔 영상으로 고려금동대탑을 추정 복원한 모습, 석굴암과 광풍각 등 건물 축조과정 영상과 내부 투사 장면 등을 볼 수 있다. 3D 모형과 영상도 이해를 돕는다.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1540년께 지어진 향단의 담장 안 모습을 가상현실(VR) 파노라마 영상으로 담았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양동마을 무첨당을 1 대 1 크기로 재해석한 ‘유첨당’을 출품했다. 세 벽면을 둘러 종묘의 풍경을 보여주는 박종우 감독의 영상작품 ‘장엄한 고요’는 보는 이에게 건물의 장엄함을 그대로 전해준다.

이준 리움 부관장은 “하늘과 땅, 사람을 존중하는 한국 전통건축의 가치를 알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20세 미만은 평일 입장이 무료다. 내년 2월6일까지. (02)2014-6901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