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도상국 대형 개발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 참여를 늘리기 위한 대외경제협력기금(EDCF)법 개정안이 1년 반이 넘도록 처리되지 않고 있다는 한경 보도(10월26일자 A3면)다. EDCF는 1987년 우리나라가 개도국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유상원조기금이다. 재원을 국가재정에만 의존해야 하는 데다, 지원방식도 초장기 저금리 차관 위주여서 건당 500억원 이하의 공적개발원조(ODA)에만 집중됐다. 그러다 보니 중진국 등이 추진하는 수천억원짜리 대형 프로젝트는 중국 등 외국 기업들에 뺏길 수밖에 없었다.

개정안은 기금 운영기관인 수출입은행이 국제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대형 원조사업을 할 수 있게 하고 이를 통해 우리 기업들의 참여를 늘리자는 게 골자다. 최소의 재정 투입으로 ODA를 늘리면서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을 돕는 경제활성화 방안인 셈이다. 그러나 야당은 해외사업이 많은 대기업이 결국 혜택을 볼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국제원조 사업의 프로세스를 보면 야당의 반대는 터무니없다. EDCF가 개도국에 구속성 지원을 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기업’을 지정할 수 있을 뿐이지, 한국의 특정 기업 혹은 중소기업을 지정할 수는 없다. 수혜국이 한국 대기업을 선호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국제적으로 개발협력 사업에 큰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9월 열린 UN개발정상회의는 2016~2030년에 적용될 새로운 아젠다로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채택했다. 그동안 교육, 의료 중심의 시혜성 개발원조 시대를 끝내고, 경제 사회 성장 인프라 민간부문 육성 등을 강조하고 있다. 참여 주체도 정부뿐 아니라 시민사회, 민간기업으로 확대된다. 재원도 민간기업의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까지 넓혔다. 선진국도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민간기업의 노하우를 접목해 ‘스마트 투자’로 방향을 튼 것이다.

중국이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을 주도하고 일본은 총리가 자원외교에 앞장서고 있는 상황이다. EDCF법 개정마저 늦어지면 한국만 뒤처진다. 원조는 원조대로 못 해 국제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사업기회는 눈 뜨고 놓칠 가능성이 크다. 다른 나라가 하는 것을 왜 우리는 못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