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생태계 번식과 스트레스, 소리로 진단한다
울창한 숲길에 들어서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숲은 고요한 듯하지만, 실상은 작은 생명체들이 내는 끊임없는 소리로 가득 찬 살아 있는 자연이다. 과학자들은 숲에 사는 짐승과 곤충이 내는 소리만 들어도 숲이 건강한지, 아픈지 가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국제자연보호협회와 과학자들은 파푸아뉴기니 숲에 24시간 소리를 녹음하는 마이크를 설치하고 숲의 소리를 분석하고 있다. 당초 이 녹음기는 불법 벌목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설치됐지만, 지금은 숲의 생태를 지키는 ‘청진기’ 역할을 하고 있다.

숲의 숨결 듣는 과학자들

국제자연보호협회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는 물론 사람 귀에는 들리지 않는 초음파까지 녹음할 수 있는 레코드를 개발하고 숲 곳곳에 35개를 설치했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는 20㎐부터 2만㎐까지다. 벌레가 날아가거나 울 때 나는 소리는 이보다 훨씬 높거나 낮은 주파수를 갖는다. 심지어 나무도 울창한 나뭇잎과 가지에서 무수히 많은 떨림이 일어난다.
숲속 생태계 번식과 스트레스, 소리로 진단한다
캐나다 퀸즈대 연구팀은 숲 속의 온갖 소리가 섞여 있는 작은 소음에서 새와 곤충이 지저귀는 소리를 추출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곤충이 날아다니는 소리는 물론이고 새의 지저귐, 산짐승의 걸음, 숲 속 나무들의 미세한 떨림소리가 분석 대상이다. 숲에 사는 동물마다 독자적인 소리 주파수와 패턴을 가진다는 원리를 이용했다.

과학자들이 호주 다귈라 국립공원에서 측정한 소리 분석 결과에 따르면 곤충은 주로 새벽 4~6시, 새는 오전 6~9시께 활발하게 지저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도에 민감한 메뚜기나 귀뚜라미 소리는 밤에 나타난다. 새도 종류에 따라 회색부채꼬리새는 오전 6~8시쯤, 까마귀는 오전 10시께 집중적으로 지저귀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회는 “사라진 소리 패턴을 알아내면 사라진 동물의 종류는 물론 환경 변화의 요인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자연 소리 담는다

이처럼 ‘생물음향학(Bioacoustics)’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내는 소리를 분석해 생태 연구에 활용하는 분야다. 해양 쪽에서는 이미 초음파 등을 이용해 돌고래 생태나 물고기떼 서식 상태를 확인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빅데이터와 실시간 센서 등 최신 정보기술(IT)과 열정을 가진 아마추어 생태녹음가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음향생태학’이란 새로운 용어까지 내놓으며 첨단을 달리고 있다. ‘네이처 사운드맵’은 고해상도 위성사진과 해당 지역에서 채집한 소리를 결합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다. 겨울철 노르웨이 북부에 사는 엘크가 먹이를 먹는 소리부터 저녁나절의 아마존 열대 우림, 남극의 빙하가 부서지는 소리까지 올라와 있다. 한국도 설악산의 아침 숲 소리가 등록돼 있다. 퀸즈대 연구진이 운영하는 ‘에코사운드’도 자발적으로 자연 음향을 기부하는 음향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전 세계 자연 상태에서 서식하는 동물의 소리를 모으고 있다.

생물자원 보호 활용

과학자들은 소리 분석이 생물학자의 과학적 호기심을 넘어 지구 환경을 지키는 수단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코넬대 연구진은 초대형 화물선이 내는 소음이 미치는 환경 연구에 주목하고 있다. 연구진은 고래와 돌고래, 어류 등 음파로 먹이를 잡는 수중생물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며 해저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운 무소음 지대를 조성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상지대와 계명대 연구진은 지난해 강원 원주 인근 고속도로 인근에 사는 번식기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통상적인 700㎐보다 높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개구리가 시끄러운 차량 소음 속에서도 방해받지 않고 번식하기 위해 더 높은 주파수의 소리를 낸 것 같다”며 “소음이 번식을 방해하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병해충이 싫어하는 특정 주파수를 찾거나 동물의 소통 방법을 활용하는 연구도 농업과 군사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