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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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남북 잠재력 발휘할 기회”
한국 통일되면 세계5위 경제대국 확신
종교 초월한 ‘한반도 평화’ 실현 노력

“보수·진보 아우르는 평화운동 추진”
햇볕정책이 北정권 생명 연장시켜
무조건 지원 대신 통일비전부터 세워야


그는 한때 세계 194개국 300만명의 신도를 거느린 통일교의 유력한 후계자였다. 통일교는 1954년 문선명 총재가 창립했다. 문 총재의 3남인 그는 두 형이 일찍 사망하면서 장남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는 문 총재가 2012년 별세한 직후 통일교권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대신 통일을 위한 시민단체 활동에 뛰어들어 ‘종교 지도자가 아닌 세계평화운동가’를 자임하며 독자 행보에 나섰다. 문현진 글로벌피스재단(GPF) 세계의장(45)의 얘기다. 미국 시애틀에서 살고 있는 문 의장은 GPF재단 주최로 지난 8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통일경제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통일로 한국 경제 성장 가능”

포럼 전날인 7일 기자와 호텔에서 만난 문 의장은 188㎝의 큰 키에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였다. 어렸을 때부터 승마를 배웠다는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한국 국가대표 승마선수로 출전했다. 메달과의 인연은 없었다.

네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문 의장은 한국프로축구연맹 회장을 지낸 곽정환 전 통일교재단 이사장의 딸인 곽전숙 씨와 결혼해 아홉 명의 자녀를 뒀다.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산 그는 “우리말이 서투르다”고 했다. 우리말로 간단한 의사소통은 가능했지만 정확한 의사 전달을 위해 이날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했다. 컬럼비아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하버드대에서 MBA(경영학 석사), 통일신학교(UTS)에서 종교학 석사 학위과정을 마쳤다.

그는 통일교 관련 질문에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언론에서 이미 잘 알지 않냐”는 원론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대신 “재단 활동을 통해 한국 청년들에게 통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GPF재단은 4월부터 중도 보수 성향의 범시민사회단체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1100여개와 함께 새시대통일의노래 조직위원회를 결성, 통일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게 통일 노래인 ‘원 드림 원 코리아’ 뮤직비디오 제작이다. 유명 작곡가 김형석 씨, 김이나 작사가 및 EXO, EXID 등 인기 가수와 스타들이 뮤직비디오 제작에 대거 참여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지난달 뮤직비디오 제작에 동참했다.

문 의장은 “젊은 사람들은 통일에 무관심하고, 통일비용을 걱정하는 건 기성세대가 잘못 심어준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더 이상의 성장은 불가능하다”며 “한국 경제의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기가 바로 통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통일 한국이 세계 톱5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지난 8일 열린 통일경제포럼 기조연설에서도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북한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화통일과 경제 개발’을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엔 비니시오 세레소 전 과테말라 대통령과 라일라 오딩가 전 케냐 총리, 김주현 통일준비위원회 경제분과 위원장, 김진표 전 부총리, 나성린 새누리당 국회의원 등 200여명의 통일경제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통일운동은 가업(家業)”

[人사이드 人터뷰] '통일교 황태자'서 통일운동가로…문현진 글로벌피스재단 세계의장
문 의장은 GPF재단과 함께 UCI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UCI는 문 총재가 1977년 세운 국제조직으로 미국의 대형 수산물 유통업체인 트루월드수산, 항공사인 워싱턴타임스항공(WTA), 일성건설 등을 소유하고 있다. 정확한 자산 규모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현 통일교 못지않은 자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UCI는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부동산을 비롯한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교와 결별했지만 문 의장이 여전히 아시아와 중남미, 아프리카 국가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토대다. 기업가인 그가 통일운동에 뛰어든 이유가 뭘까.

그는 “통일운동이야말로 부친인 문 총재의 뜻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일운동은 제 집안의 가업입니다. 종조부께서는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에 헌신하셨습니다. 선친께서는 1990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만나 양국 간 수교와 경제협력 등을 논의했고, 이듬해 12월에는 김일성 북한 주석과 만나 대북 교류의 물꼬를 텄습니다. 저도 선친께서 살아계시는 동안 통일 관련 일을 계속 도와드렸습니다.” 그는 지난해 자신이 남북 통일에 관해 쓴 저서인 ‘코리안 드림’에서 “아버지는 종교를 넘어서 한반도 통일을 세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인 토대라고 보셨다”고 말했다. 현 통일교권과 달리 부친을 통일교 창시자보다 세계 평화 및 통일운동가라는 측면에서 바라본 것이다. 문 의장이 통일교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도 문 총재의 ‘메시아론’에 대한 이 같은 시각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햇볕정책으로 북한 정권 생명 연장”

문 의장은 부친이 김일성 주석을 만났던 것처럼 현 북한 1인자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만날 계획은 없을까. 그는 “(김정은을) 만나려면 충분히 만날 수 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수년 전부터 북한 측으로부터 여러 번 방북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부터 햇볕정책을 펼치면서 수많은 종교단체와 시민단체가 북한 지원에 나섰습니다. 각각의 단체가 다른 의도를 갖고 북한에 접근한 것입니다. 북한은 이들 단체를 이용해 재정 지원을 받아냈습니다. 결국 햇볕정책의 미명 아래 북한을 지원한 결과가 북한 정권의 생명을 연장하고 핵개발을 돕게 됐습니다.”

문 의장이 지난해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불거진 종북(從北)의 개념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 대신 한국 사회의 통일에 대한 비전 정립이 우선돼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어떤 통일된 미래를 이룰 것인가에 대해 한국 사회 내부에서 합의를 먼저 한 뒤 국제사회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GPF재단이 주도하는 시민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보수와 진보단체를 아우르는 평화운동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조만간 북한에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확신했다. “독재 정권은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옛 소련의 붕괴와 중국 개방에 이어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도 최근 미국과 수교했습니다. 북한은 이미 중국으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김정은이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한 것이 중국의 눈 밖에 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했다. 김정일 체제 2인자였던 장 전 부위원장은 2013년 12월 국가전복 음모죄로 처형됐다. “장성택은 중국을 따라 개방하려고 했습니다. 그를 처형한 것은 중국에 대한 큰 모욕이었습니다. 중국 지도부도 이젠 한국 정부가 통일을 주도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 워싱턴에 본부 둔 글로벌피스재단은
개도국 자립 지원…각국 돌며 사회·경제 콘퍼런스


문현진 의장은 2007년 비영리 국제 민간기구인 글로벌피스재단(GPF)을 설립했다. GPF재단은 미국 워싱턴 본부와 세계 22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자립 지원, 각 분야 전문가 간 세계 네트워크 구축, 유엔 새천년개발목표에 입각한 지속적인 세계 개발 활동 등을 수행하고 있다.

GPF재단의 비전은 ‘신 아래 한 가족(One Family under God)’이다. 하지만 통일교에 국한하지 않고 종교를 초월한 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 재단 측의 설명이다. 문 의장은 “종교의 가르침은 평화를 세계에 확산시키는 것임에도 현실에서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GPF재단은 매년 세계 각국을 돌며 정치·경제·사회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법을 모색하는 콘퍼런스를 열고 있다. 2007년 출범 이후 케냐, 나이지리아, 말레이시아, 몽골, 파라과이 등에서 잇달아 총회를 열었다. 지난해 11월 파라과이 수도인 아순시온에서 열린 ‘글로벌피스컨벤션 2014’엔 중남미 9개국 14명의 전직 대통령이 참석했다. GPF재단은 문 의장이 회장을 맡고 있는 UCI그룹의 막대한 재력을 토대로 개발도상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