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구의 교육라운지] '맘충' 이전에 '수시충'이 있었다
교육은 대한민국 모든 사람의 관심사입니다. 조기교육, 영재교육부터 초·중·고교, 대학, 평생교육까지 교육은 '보편적 복지' 문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계층과 지역간 교육 인프라와 정보의 격차가 존재합니다. 한경닷컴은 다양한 교육 문제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김봉구의 교육라운지'를 연재합니다. 입시를 비롯한 교육 전반의 이슈를 다룹니다. 교육 관련 칼럼과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Q&A 등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벌레들의 시대다. 각종 ‘OO충’이 한국사회를 떠돌고 있다. ‘맘충(mom+蟲)’이 대표적이다. 가장 원초적이고 포근한 단어인 엄마와 극도의 경멸을 담은 벌레의 결합이라니. 일부 무개념 엄마를 가리키는 말이라지만 영 섬뜩하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정확한 연원은 모르겠다. 다만 기자가 처음 접한 이런 류의 신조어는 ‘수시충’이었다. 교육 분야 취재를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높은 수능 점수를 받아 대입 정시모집에 합격한 학생들이 수시 합격생은 자신들과 급이 다르다며 ‘충’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수시충의 하위 범주로는 ‘지균충’과 ‘기균충’이 있다. 지역균형·기회균등선발전형 같은 사회적 약자나 취약층을 배려하는 전형의 합격자를 가리킨다. 처음엔 웃어넘겼다. 치기 어린 표현이려니 했다. 얼마나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합격했으면 저럴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학교의 서열을 매기는 것도 모자라 같은 대학 학생들마저 수능 점수에 따라 우열을 가르고, 나아가 벌레로 호칭하며 선을 긋는다. 수시충이란 단어가 입에 오르내린 지 몇 년 됐으니 지금의 OO충 번식에 일조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사실 근거 없는 차별이다. 지역균형·기회균등전형은 그들의 몫을 빼앗지 않았다. 애초에 별도 정원이 배정된 전형들이다. 전체 입학생 중 차지하는 비중도 그다지 크지 않다. 이런 수시전형의 합격생들이 정작 대학에서 뒤처지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이들의 학업성취도가 더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정시와 수시란 선발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차이를 차별로 바꿔버린 촉매제가 ‘수시충’으로 집약되는 경멸의 언어였다.

타자를 철저히 구분지어 낙인 찍는다는 점에서 맘충 논란과 닮았다. 소위 무개념 엄마가 아니면 괜찮을까? 해서 신경 안 쓰면 되는 문제일까? 아니다. 저변에 광범위한 ‘성(性)별 적대’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여성 혐오 정서는 맘충 논란을 사회적 이슈로 키운 주범 가운데 하나다. 나와는 다른 존재로, 나아가 OO충으로 만들어 비하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면에서 맥을 같이 한다.

이것은 구조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가 아니다. 지역주의, 보혁(保革) 갈등, 세대 갈등 같은 기존의 배타적 편가르기 문화가 아주 사적이고 세분화된 영역에까지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침투한 것일 뿐이다. “그렇게 해서, 행복하십니까?”라고 묻는 질문엔 할 말이 없어지는.

/ 한경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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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돌 한글날이다. 단지 우리 것이어서가 아니라 한글은 정말 아름다운 문자다. 기계치인 기자가 과학적 원리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많지 않은 사례 중 하나가 한글이다. 하지만 형식이 내용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기표(시니피앙)와 기의(시니피에)의 관계는 자의적이라고 정의했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불쌍하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매일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훈민정음 언해본)

즉 국민이 쉽게 익혀 편히 쓰게 하려고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경멸과 혐오, 분노와 적대, 차별과 낙인 등의 정서와는 뿌리가 다르지 않은가. 한글날을 맞아 OO충 같은 단어가 아니라 아름다운 한글에 걸맞은 내용이 좀 더 풍성하게 담겼으면 한다는, 소박한 바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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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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