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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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0일 LG화학의 전남 나주공장. “박진수 부회장이 격려차 방문한다”는 소식에 직원들은 다소 들뜬 분위기였다. LG화학이 2분기에 563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7분기 만에 최대 실적을 올린 직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좋은 실적을 올렸다고 결코 자만해서는 안 된다”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그는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며 “대규모 신규 사업은 성장 속도가 더디고 연구개발(R&D)에서도 사업 성과에 기여할 수 있는 신제품 및 신기술 개발이 부족한 게 지금 LG화학의 냉정한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글로벌 유가 급락으로 인해 국내 석유화학 기업은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LG화학의 2014년 영업이익은 1조3107억원으로 전년보다 24.8% 감소했다. 올해 ‘터널’을 뚫고 나온 만큼 환호성을 올릴 법도 했지만 박 부회장은 오히려 ‘채찍’을 들었다. 그는 “아침 해가 온종일 계속되지 않는다”며 “밤을 밝힐 등불을 준비해야 한다”고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잘나가는 시기에 경계하라’는 박 부회장의 메시지는 그의 평소 좌우명과도 맥이 닿아 있다.

박 부회장은 중국 고전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신기독(愼其獨·혼자 있을 때도 삼갈 줄 알아야 한다)’이라는 말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인천 제물포고 재학 시절 교장 선생님이 직접 써 건네준 글씨를 액자에 넣어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스스로 엄격함을 추구하는 완벽주의자지만 직원들로부터는 현장 스킨십을 통해 신뢰를 얻고 있다. 박 부회장은 전남 여수, 충남 대산공장 등을 방문할 때 수행원 없이 4~5시간 동안 공장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장에서 마주치는 직원과는 꼭 악수를 한다. 올초 LG화학의 최대 현장인 여수 공장을 방문할 때는 40여개 부서 임직원과 모두 악수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박 부회장은 석유화학업계에서 현장 이해도가 가장 높은 최고경영자(CEO)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LG화학의 전신인 (주)럭키에 입사한 이후 여천 스티렌수지 공장장(상무), 특수수지 사업부장(상무) 등을 거치며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았다. 롯데케미칼과 공동으로 옛 현대석유화학이 보유하고 있던 대산공장을 인수한 뒤 현장에서 인수 과정을 원활하게 이끌기도 했다.

박 부회장이 LG화학 대표이사 사장이 된 2012년은 글로벌 석유화학 업황이 막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시기였다. 어려운 시점에 키를 잡은 박 부회장은 ‘LG화학호(號)’를 이끌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2012년 8.2%였던 영업이익률은 올 상반기 9.3%로 상승했다. ‘덩치’도 키웠다. 총자산도 2012년 말 16조5811억원에서 올 6월 말 18조3463억원으로 10.64% 증가했다.

LG화학은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글로벌 석유화학업계 ‘톱10’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화학학회 ACS(American Chemical Society)가 매출과 영업이익 규모 및 증감률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최근 발표한 ‘2014 글로벌 톱50 화학기업’에서 LG화학은 13위에 올랐다.

대표이사 취임 이후 4년여를 보낸 박 부회장은 이제 LG화학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눈을 돌리고 있다. 수(水)처리 분야는 박 부회장이 최근 적극적으로 키우고 있는 미래 먹거리다. LG화학은 충북 청주에 수처리 필터 전용공장을 완공하고 지난달부터 상업 생산에 들어갔다.

역삼투압 필터란 높은 압력을 가해 물 분자만 통과시켜 물을 정화하는 방식으로, 가정용뿐만 아니라 산업용으로도 뛰어난 수처리 소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LG화학은 작년 4월 해수담수화용 필터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미국 회사 나노H2O를 인수해 수처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박 부회장은 “수처리 사업은 LG화학이 반드시 글로벌 1등으로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박 부회장은 “좋은 실적을 내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실적이 진정으로 고객을 만족시켜 얻은 결과냐는 것”이라며 “고객과 시장으로부터 인정받는 진정한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해 전 임직원이 한여름에도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의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박진수 부회장은…
(주)럭키 입사 후 38년간 석유화학 외길
현장 정통한 CEO ‘명성’…“뺄셈 잘해야 진짜 프로”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국내 석유화학 업계 최고경영자(CEO)의 산실인 서울대 화학공학과 70학번이다. 김반석 전 LG화학 부회장, 홍기준 전 한화케미칼 부회장,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 등이 서울대 화공과 출신이다.

박 회장은 서울대 화공과를 1977년 졸업한 뒤 (주)럭키(현 LG화학)에 입사했다. 이후 38년간 ‘석유화학 외길’을 걸으며 국내 화학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LG화학 내부에서는 박 회장을 ‘미다스의 손’으로 부른다. 거쳐가는 곳마다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첫 근무지였던 여수공장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ABS)과를 거쳐 2002년 ABS/폴리스티렌(PS) 사업부장을 맡을 때까지 그는 고기능성 소재인 ABS 사업에 집중해 세계 1위로 키워냈다. 2005년에는 옛 LG석유화학 대표이사로 취임, 나프타분해시설(NCC)을 아시아 톱3 규모로 성장시켰다.

2008년부터 LG화학 석유화학사업 본부장(사장)을 맡은 그는 2012년 LG화학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2014년엔 부회장으로 승진해 LG화학을 맡고 있다. 박 부회장은 ‘현장중심형 CEO’로 통한다. 전남 여수공장 생산과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PS 생산라인을 새 공정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현장에 야전침대를 마련해 몇 주간 현장을 지켰다. 일본인 기술고문이 재가동까지 6개월이 걸린다고 했지만 그는 예상을 뒤엎고 3주 만에 공장을 정상화했다.

CEO로 승진한 이후에도 현장을 수시로 방문해 직원들을 만나 챙기고 미국, 일본 등에서 열리는 채용 행사도 직접 찾아간다. 지난달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LG화학 채용 행사를 주관했다.

박 부회장은 소통과 솔선수범을 리더의 덕목으로 꼽는다. 불필요한 격식을 차리지 않는 성향 때문에 집무실로 개인적인 고민을 상담하러 찾아오는 임직원이 많다. 해외 출장을 갈 때는 수행원 없이 혼자 다닌다. 그는 “진정한 프로는 뺄셈을 잘한다”는 ‘뺄셈론’을 임직원에게 늘 강조한다. “자원과 시간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것은 과감히 빼 버리고 꼭 해야 하는 일, 본질적인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 박진수 부회장 프로필

△1952년 인천 출생 △1977년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1977년 (주)럭키 입사 △2003년 현대석유화학 공동대표이사 부사장 △2005년 LG석유화학 대표이사 부사장 △2006년 금탑산업훈장 △2008년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장(사장) △2012년 LG화학 대표이사 사장 △2014년~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

송종현/김보라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