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치매 앓는 할머니 모셔야…" 병역기피했다 들통
지난해 8월 내가 속한 서울지방병무청 현역모집과 생계팀에 서류가 들어왔다. 서울 풍납동에 사는 박은혁 씨(가명·25)는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를 부양해야 해 군대에 갈 수 없다”며 생계곤란사유 병역감면원을 냈다.

이 제도는 ‘현역병 입영 대상자 중 본인이 아니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이 원할 경우 심사를 거쳐 병역면제를 처분할 수 있도록 한다.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이 입대하고 나면 그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1949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박씨는 “할머니는 시각장애인 1급에다 치매를 앓고 있어 사실상 혼자 생활이 불가능하고 아버지는 10여년 전에 가출해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의 가족은 아버지와 할머니뿐이었다.

우리 팀은 박씨가 제출한 서류를 면밀히 살폈다. 가난한 이들에게 합법적으로 군 복무 면제를 돕는 게 우리 일이다. 제도를 악용하는 이들을 솎아내는 일도 우리가 할 일이다. 병역 감면 대상자가 되기 위해선 부양비율·재산액·월수입액 등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병무청장이 정한 2014년 기준은 재산액 5390만원 이하, 월수입액은 2인 가구 102만원, 3인가구 130만원이었다.

박씨의 재산은 없었고, 9100만원짜리 할머니 소유의 빌라가 한 채 있었다. 박씨의 2013년 한 해 근로소득은 180여만원이었다. 관건은 행방불명됐다고 주장하는 박씨 아버지를 가족에 포함하느냐 여부였다. 아버지를 가족에서 제외하면 감면 대상자가 될 수 있지만, 가족에 포함하면 대상자가 되지 않았다.

박씨의 자료를 살펴보던 우리 팀원들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박씨가 감면원을 제출하기 직전인 2014년 7월에서야 아버지를 거주불명으로 등록하고, 가출신고를 낸 점이다. 더군다나 박씨의 작은아버지는 할머니 빌라에 2014년 7월까지 함께 살다가 갑작스레 다른 곳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박씨의 은행 계좌도 수상했다. 박씨 통장에는 농산물업체를 상대로 한 금융거래 내역이 찍혀 있었다. 조사 결과 박씨 아버지는 2011년부터 현재까지 인근에 있는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일하며 고정 수입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우리 팀은 2014년 8월 “박씨의 아버지는 거주불명으로 등록돼 행방을 알 수 없는 사람에 해당하지 않으며 병역 감면 기준 중 부양비, 수입액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 생계곤란병역 감면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부결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박씨는 우리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법원의 판단은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김병수)는 박씨가 서울지방병무청장을 상대로 낸 현역병입영통지처분 취소 소송에서 지난 1월30일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박씨)는 2010년 10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대학 진학, 질병사유로 입영을 연기해왔고 생계곤란 사유를 주장한 적이 없다”며 “또한 원고의 2013년 근로소득을 고려해볼 때 원고가 할머니를 부양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2부(부장판사 이균용)도 지난 8월 “1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며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지난해 생계유지곤란 병역감면 제도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은 의무자는 1255명이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