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에 맞서 경영권 지켰지만 실적부진 '발목'…'듀폰의 여전사' 쿨먼 CEO 사임
미국 최대 석유화학업체 듀폰의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인 엘런 쿨먼 회장(사진)이 전격 사퇴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고비를 넘기고,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회사 분할 요구에 맞서 213년 역사의 듀폰을 지켜냈지만 실적 부진의 책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듀폰은 5일(현지시간) 쿨먼 회장이 회장 및 CEO직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후임은 정해지지 않았으며 당분간 에드워드 브린 사외이사가 임시 CEO직을 맡는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쿨먼 회장은 제너럴일렉트릭(GE)을 거쳐 1988년 듀폰에 입사했다. 입사 21년 만인 2009년 1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회사가 어려움을 겪자 ‘구원투수’ 역할을 맡아 CEO가 됐다. 당시 전체 인력의 15%를 줄이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을 통해 회사를 정상화시키며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기업인으로 부상했다.

지난 5월에는 기업사냥꾼 넬슨 펠츠가 이끄는 헤지펀드 트라이언파트너스가 12명의 등기임원 중 4명을 자신이 추천하는 인물로 교체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한 채 정기 주주총회에서 위임장 대결까지 벌여 이를 물리쳤다. 당시 쿨먼 회장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월가 뮤추얼펀드 등 장기투자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면서 듀폰을 벼랑 끝 위기에서 구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달러화 강세와 신흥국 경기 둔화로 인한 실적 부진을 쿨먼 회장의 사임 배경으로 꼽았다. 듀폰 주가는 올 들어 27% 급락했으며 시가총액도 446억달러 감소했다.

듀폰은 이날 쿨먼 회장의 사퇴와 함께 올해 주당순이익(EPS)을 3.10달러에서 2.70달러로 낮췄다. 또 내년 말까지 13억달러의 지출을 줄이는 비용절감 계획도 발표했다.

쿨먼 회장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지금은 새로운 지도자를 통해 변화 속도를 높이고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한 투자를 확대할 적기”라고 강조했다고 포브스는 전했다. 듀폰 주가는 이날 쿨먼 회장의 사퇴 발표 후 시간외 거래에서 6% 급등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