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미루다 헐값에…경영권 프리미엄 7분의 1 토막
상장사를 인수할 때 지급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웃돈)이 지난 2년 사이에 7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웃돈은커녕 주가를 밑도는 가격에 기업을 넘긴 곳도 절반이나 됐다. 생존을 위한 사업재편 또는 구조조정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위기가 닥친 뒤에야 헐값으로 시장에 나오는 기업들이 늘면서다.

○눈물의 ‘마이너스 프리미엄’

6일 한국경제신문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최대주주가 바뀐 상장사 40곳의 기업 인수합병(M&A)을 전수 조사한 결과 경영권 프리미엄 가격은 평균 12.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수 가격이 계약 시점 기준 주가(계약일 전 1개월간 평균 종가, 1주일간 평균 종가, 전일 종가를 가중산술평균한 값)보다 평균 12.2% 더 높은 수준에 책정됐다는 얘기다. 반면 2012년부터 2013년 상반기까지 1년6개월 동안 최대주주가 바뀐 상장사 57곳의 경영권 프리미엄은 평균 80%에 달했다. 이번 조사 시점과 비교하면 7배가량 높았다.

구조조정 미루다 헐값에…경영권 프리미엄 7분의 1 토막
40곳 중 20곳은 주당 인수 가격이 거래 시점 주가보다 낮게 책정된 ‘마이너스 프리미엄’을 기록했다. 특히 3년 이상 영업손실을 기록하거나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선 회사들의 경우 주가 대비 할인율이 최고 75.4%까지로 치솟았다. 지난 6월 중국에 매각된 게임업체 로코조이(구 이너스텍)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기준 주가 2만7013원의 4분의 1 수준인 주당 6650원에 팔렸다. 반도체 업체 피델릭스도 같은 달 중국 동심반도체에 52.3% 할인된 가격에 경영권을 넘겼다. 의료기기 업체인 위노바는 LED 사업 등 신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했다가 3년간 평균 20% 안팎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지난 5월 주가 대비 61.6% 싼값에 국내 다른 기업에 넘겨졌다.

도료업체인 현대페인트(-54.3%)도 업황 부진 속에서 새 먹거리를 찾지 못하면서 적자 상태를 이어가다가 기준 주가의 절반도 안되는 금액에 지난 3월 경영권이 넘어갔다. 아이리버(-23.7%) 보루네오가구(-9%) 등도 마찬가지였다. 한 대형 로펌의 M&A 전문 변호사는 “프리미엄을 못 받는 곳은 인수할 주주가 기대하는 무형의 가치가 크지 않다는 얘기”라며 “매각을 조금만 서둘렀더라면 좋은 가격을 받았을 매물들이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타이밍 맞으면 2.6배도

경기침체기에 부실기업 매물이 늘어난 수급 요인도 있지만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치고 시일을 끌다가 재무적으로 한계에 도달한 뒤 경영권을 내놓은 사례가 많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기업을 무리하게 인수했다가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프리미엄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실사 과정에서 잠재적 부실을 이유로 아예 인수 자체를 포기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올해 매각을 추진했던 한 물류 회사는 당초 10여곳의 기업이 인수 의향을 보였으나 해외 사업장 실사 이후 대부분 인수의사를 철회한 상태다.

반면 코스닥 상장사인 디지탈옵틱은 지난해 10월 기준 주가(1만617원)보다 163.7% 높은 주당 2만8000원에 매각돼 ‘경영권 프리미엄 1위’를 차지했다. 매각 직전 3년 평균 10% 수준의 영업이익률에 신사업 진출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아큐픽스(117.8%) KB손해보험(옛 LIG손해보험, 95.7%) 등이 뒤를 이었다. 태림포장공업(82.8%) 동일제지(77.2%) 농우바이오(73.6%) 한라비스테온공조(50.5%) 등도 비교적 높은 프리미엄을 받았다. 대부분 영업이익률이 높고 재무상태가 비교적 우수한 기업들이다.

IB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나 동양시멘트 등 최근 이뤄진 우량 기업의 인수전을 보면 여전히 높은 프리미엄이 제시된다”며 “지난 2년 사이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급락한 것은 우량 매물보다는 부실 매물이 많고, 부실 매물들이 전체 프리미엄의 평균 가격을 크게 끌어내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제적 구조조정 서둘러야

물론 우량 기업만 높은 프리미엄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다소 실적이 나쁘더라도 조직 내 긴장감이 높고 구조조정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회사는 높은 가치를 평가받는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기업이 헐값에 넘겨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상시·선제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부실관리만 투명하게 잘해도 인수기업의 불확실성을 덜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지금 같은 불황기에 자신이 받고 싶은 가격만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더 높은 값을 받기 위해 버티다가 다른 계열사들까지 동반 부실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