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안 하기 경쟁’은 공직사회에도 뿌리 깊게 만연해 있다. 정책이란 게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만큼 조그만 실수도 책임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기업인의 사소한 판단착오까지 배임죄를 씌워 과도한 책임을 묻는 것처럼 공직자에게도 비슷하게 책임을 추궁하는 탓에 실수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것이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불러오고, 더 나아가 ‘무책임 행정’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지적이다.

공직사회에 팽배한 ‘내 임기 중에만 아니면 된다(not in my term·NIMT)’는 현상이 단적인 사례다. 어떤 결정으로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임기 동안에는 책임지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풍조다. 정부 한 관계자는 “실수, 혹은 판단착오로 인해 그동안의 경력을 송두리째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공직자들을 움츠리게 하고 소신있는 행동을 막는 가장 큰 요인”이라며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은 아직도 공직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빚어지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국이 소신을 갖고 추진해야 할 중요 정책과제가 누락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기업 구조조정 실종이 그런 사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년 이상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은 2009년 2698개에서 지난해 3295개로 늘었다. 경기 침체로 이런 ‘좀비(zombie)기업’은 계속 늘고 있지만 기업 구조조정은 별다른 진척이 없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뒤늦게나마 유암코(연합자산관리)를 통해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공급 과잉으로 구조적인 장기 불황에 처한 조선, 철강 등에 대한 산업 차원의 구조조정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장관을 지낸 한 전직 관료는 “공직자들이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는 처벌이 두렵기 때문”이라며 “잘못 개입했다가는 뒤탈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소극적 자세로 일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 배짱을 갖고 용기있게 칼을 휘두르는 공직자가 나오길 바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며 “하지만 요즘 공직사회 분위기에서 그런 기대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금융당국에선 전직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가 지난해 모 건설 대기업 워크아웃 과정에서 실사를 맡았던 회계법인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구속된 것이 공무원들이 더욱 몸을 사리는 계기가 됐다고 보고 있다.

공무원들이 규제 개혁에 소극적인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규제를 풀었다가 자칫 시민단체 등의 소송에 휘말려 책임을 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오죽하면 국무총리가 나서 규제를 풀지 않는 공무원의 소극적인 자세도 비리로 간주해 처벌하겠다는 얘기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