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국회 공무원 A씨는 퇴직한 지 3~4년이 지난 지금도 매일 국회를 찾는다. 차관급 직위를 마지막으로 공무원 생활을 접은 직후부터 대형 로펌에서 일하면서 국회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후배인 현직 국회 공무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입법 관련 동향을 수집한다.

A씨의 진가가 드러나는 건 국회의 각 상임위원회에 소속된 입법조사관들이 법률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작성할 때다. 상임위의 법안 심사 때 첨부되는 검토보고서에는 법안 통과가 적절한지 아닌지에 대한 의견이 담겨 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의원들이 개별 법률을 다 알 수 없다보니 검토보고서에 나와 있는 방향에 맞춰 의결권을 행사할 때가 많다”며 “전직 국회 공무원들은 이 같은 검토보고서 작성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고 귀띔했다. 해당 로펌에서는 A씨와 같은 활동을 ‘입법 컨설팅’으로 부른다.

한국에서 합법적인 로비스트 활동은 아직 불가능하지만 국회에서는 이 같은 음성적인 로비스트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A씨처럼 대형 로펌에서 활동하는 국회 고위직 출신이 세 명 이상”이라며 “국회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전관예우 규제나 관련 직무 취직제한 등도 없다보니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원들이 자신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부탁을 받고 법안을 발의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 재선 의원 보좌관은 “법안 발의가 꼭 통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보니 의원도 별다른 죄책감 없이 생색내기용으로 법안 발의에 나서기도 한다”며 “반면 의원들과 평소 친분을 쌓지 못한 압력단체나 기업은 입법 과정 자체에 접근할 수 없어 그만큼 불이익을 보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보좌관이나 행정부 공무원이 주요 이익단체나 대기업으로 이직해 입법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법안 처리 과정에 소속 단체의 입장을 설명하기도 한다. 한 기업 관계자는 “그나마 규모가 큰 단체나 기업은 국회 담당 직원을 따로 둘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창구조차 없다”며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