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론 대한민국 미래 없다] 실력 아닌 '실수 평가'로 병드는 대한민국
우리 사회에 실력이 아니라 실수 여부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등 학습 능력평가는 물론 공무원, 군인, 전문경영인의 진급과 승진, 고위 공직자의 인사검증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까지 능력보다는 누가 실수를 덜 했는지를 따지는 게 핵심 잣대가 됐다는 지적이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갈라야 하는 승부가 ‘실수 피하기 게임’으로 변질되면서 도전의식이 사라지고 무사안일이 만연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수로 한 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내려가는 ‘물수능’(쉬운 수능)이 단적인 사례다. 교육계 관계자는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최근 수년간 쉬운 문제만 골라내면서 대학 입시는 ‘갈고닦은 실력을 겨루는 무대’가 아니라 ‘누가 실수를 덜 하느냐’의 싸움이 됐다”고 말했다.

‘실수 안 하기 경쟁’은 공직사회에도 만연해 있다.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거나 책임질 만한 일이 생기면 결정을 미루고 회피하는 풍조가 심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내 임기 중에만 아니면 된다(not in my term·NIMT)’는 말이 공무원 사이에 유행할 정도다.

최근 고위 공직자 인사검증 때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보다는 업무과정에서 실수를 했는지를 따지면서 실수에 대한 공무원의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영상 판단 착오조차 배임죄로 단죄하는 사법적 판단 때문에 기업 최고경영자(CEO) 역시 몸을 사리는 경향이 강하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실수 평가의 바탕엔 사소한 실수를 트집 잡아 남을 끌어내리려는 뿌리 깊은 평준화 의식이 깔려 있다”며 “상대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 한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