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미래 있는가…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그러나 이대로라면 절망이다
한국경제신문이 창간 51주년(10월12일)을 앞두고 일반 국민 5000명을 대상으로 한국의 ‘희망 농도’를 측정했다.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10명 중 8명 이상이 ‘앞으로 더 나은 삶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한국이라는 ‘개천’에서는 이제 ‘용’이 나오긴 어렵다는 우울한 인식이다. 교수, 연구원, 대기업·중소기업 임원 등 전문가 400명의 의견도 비슷했다. 현재 한국의 경제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은 1.0%에 불과했다.

계층 상승 가능성에 회의적

일반인 설문조사 대상자들에게 ‘서민이 중산층으로 올라가거나, 중산층이 고소득층으로 올라가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는 명제에 동의하는지를 물었다. ‘별로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51.3%로 가장 많았다.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경제신문은 한국리서치와 공동으로 지난달 4일부터 10일까지 1주일간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 대상은 5000명(일부 세부 항목은 1000명)이다. 일반적인 전국 여론조사 표본 크기인 1000명의 다섯 배다.

1000명 조사의 표본 오차는 ±3.1%포인트다. 5000명으로 늘리면 이 오차가 절반 이하인 ±1.4%포인트(95% 신뢰수준)로 줄어든다. 설문조사 결과가 ‘실체적 진실’에 가까워진다. 1000명 조사에서는 연령별, 지역별 등으로 세분화하면 표본 수가 더 줄어 통계적 유의성을 갖기 어렵다. 하지만 5000명이면 다르다. 연령대별로 나눠도 각각의 조사 대상이 1000명 안팎이다. 조사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본부 이사는 “전체뿐만 아니라 하위그룹별로도 조사의 정확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것이 이번 조사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한국경제신문은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공동으로 400명의 전문가그룹에 대한 이메일 설문을 병행했다. 경제 문제 등에 대한 심층적인 진단과 구체적인 대안을 구하기 위해서다. 전문가그룹은 대학의 경제·경영학과 교수와 경제 관련 연구소 연구원, 대기업 및 중소기업 임원 100명씩으로 구성했다. 조사 대상은 KDI가 공공 정책 수립에 활용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전문가그룹 풀(pool)에서 뽑았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의견도 33.3%에 달했다. 전체의 84.6%가 ‘계층 상승’ 가능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긍정적인 답변은 13.8%에 그쳤다. ‘사업에서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는 항목도 결과는 비슷했다. 설문 대상자의 64.3%가 ‘별로 그렇지 않다’(43.6%) 또는 ‘전혀 그렇지 않다’(20.7%)고 응답했다. ‘패자부활’이 힘들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앞으로 일자리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도 74.9%의 응답자가 고개를 저었다. 고용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의견은 22.7%에 불과했다.

그늘진 ‘2015년 대한민국’

한국의 경제 상황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도 싸늘했다. ‘좋은 편이다’는 대답은 0.5%에 그쳤고 ‘매우 좋다’고 답한 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다. 반면 ‘나쁜 편이다’(70.5%)와 ‘매우 나쁘다’(12.8%)를 합친 부정적인 대답은 83.3%에 달했다.

경제 상황이 악화된 원인은 나라 안팎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청년실업과 가계부채가 문제라는 응답자가 41.4%로 가장 많았다. 신흥국 성장세 둔화와 환율 등 대외적 요인을 지목한 비율(39.3%)도 적지 않았다.

교수들은 대내 요인에서 문제를 찾는 경향(52.3%)이 높았고, 대기업 임원들은 대외 요인(52.6%)에 무게를 뒀다. 정영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여론분석팀장은 “직업 특징과 일선 현장의 관심사가 반영된 것”이라며 “한국 경제가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개혁을 추진 중인 공공 노동 교육 금융 등 ‘4대 부문’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부정적이었다. 특히 노동 부문에 대해서는 대부분 전문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매우 나쁘다’(19.5%)와 ‘나쁜 편이다’(61.0%)의 비율이 80%를 넘었다. ‘좋다’고 응답한 비율은 1.0%에 머물렀다.

공공 교육 금융 부문도 사정은 비슷했다. 부정적 평가가 모두 절반 이상이었다. 교육 부문은 대기업의 평가(보통이다 46%)가 상대적으로 후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나쁘다’(15.3%)와 ‘나쁜 편이다’(40.3%)는 비율이 55.8%로 집계됐다.

공공 부문도 ‘나쁘다’고 응답한 비율이 교수(61.0%), 연구원(53.0%), 대기업 임원(56.0%), 중소기업 임원(49.0%) 등 모든 그룹에서 ‘좋다’는 비중을 훨씬 웃돌았다. 금융 부문만 ‘보통이다’(43.5%)와 ‘나쁘다’(43.8%)가 비슷한 비율로 나와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다.

희망의 불씨는 살아있다

질문을 ‘대한민국 미래 전반’으로 돌리면 답변의 색깔이 달라졌다. ‘10년 후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전반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전체 설문 응답자의 55.0%는 ‘긍정적’이라고 대답했다.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의견(40.9%)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한국 사회가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은 버리지 않았다.

고연령층일수록 희망의 농도가 짙었다. 60대 이상에서는 긍정적이라는 비중이 76.0%에 달했다. 50대도 긍정적이라는 답변(60.7%)이 부정적이라는 의견(34.7%)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전문가그룹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0년 뒤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현재에 비해 어떻게 변할 것이라고 전망하느냐’는 물음에 전체의 49.5%가 ‘높아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약간 낮아질 것’(18.0%) 또는 ‘매우 낮아질 것’(1.0%)이라는 부정적 의견을 훌쩍 뛰어넘었다.

전문가그룹 중에서는 대기업 임원들의 평가가 특히 후했다. ‘국제적 위상이 지금보다 높아질 것’이라는 응답이 52.0%로 집계됐다. ‘낮아질 것’이라고 본 사람들은 7.0%에 불과했다.

낙관적인 전망이 힘을 받으려면…

하지만 ‘낙관’의 토대는 허약했다. 질문에 ‘경제’라는 구체적인 단어 하나만 더 들어가도 답변은 금세 부정적으로 변했다. ‘10년 후 우리나라 경제가 어떨 거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좋아질 것’이라고 긍정적인 대답을 한 비율은 28.4%에 그쳤다. ‘나빠질 것’으로 보는 응답자는 이보다 많은 31.1%였다.

연령대별로는 2040세대(20~49세)와 5060세대(50~69세)가 ‘다른 나라에 사는 듯’ 서로 다른 대답을 했다.

10년 후 경제 상황이 지금보다 악화될 것으로 보는 비중은 20대(36.5%)와 30대(39.4%), 40대(35.5%) 모두 ‘좋아질 것’(20대 19.2%, 30대 15.6%, 40대 20.6%)이라는 대답을 훌쩍 넘어섰다. 반면 60세 이상은 긍정적인 대답(49.6%)이 부정적인 의견(17.7%)을 두 배 이상 웃돌았다.

50대 역시 희망적인 답변(32.5%)이 우울한 전망(29.3%)보다 많았다. 한국의 미래가 밝을 것으로 예상 또는 기대하지만 구조적인 혁신 없이 지금 이대로 흘러가다간 좌초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어떻게 하면 한국의 미래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처방은 다양했다. 그만큼 사회 전반에 쇄신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과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전문가그룹은 ‘신성장산업 육성’(33.5%)을 첫손에 꼽았다. 산업 현장과 맞닿아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원들이 특히 새로운 성장엔진에 목말라했다.

신성장산업 육성이 필요하다고 대답한 비중은 각각 38.0%와 40.0%로 교수(29.0%)와 연구원(27.0%) 집단을 넘어섰다.

그다음으로는 일자리 창출(17.5%)이 꼽혔고 정치개혁(16.3%), 저출산·고령화 대응(14.3%), 정부 효율성 증대(9.0%) 등이 뒤를 이었다.

안재석/박종서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