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탄소배출권 불확실성 커져…안정적인 수입처 확보 시급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25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 국가단위 탄소배출권 시장을 2017년 개설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2012년 유럽이 중국산 배출권 수입을 금지함에 따라 무용지물이 된 중국산 유엔 탄소배출권을 ‘중국배출권’으로 이름만 바꾼 뒤 이용해왔다. 7개 지방정부 단위로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총거래량은 2400만t으로 한국 배출권 시장의 5%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국의 총배출량은 한국의 15배에 달하기 때문에 새로 시작할 국가단위 배출권 시장은 그 구조와 규모가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2030년까지 총 탄소배출량 증가 속도를 낮추겠다는 내용을 지난 6월 유엔에 보고했다. 2030년까지는 총배출량이 늘어나지만 증가 속도를 떨어뜨려 탄소집약도를 낮춘다는 계획이다. 예컨대 국내총생산(GDP)이 2배 커져도 탄소 배출이 2배 이하로 늘어난다면 탄소집약도는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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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경제성장에 따른 탄소 배출 증가는 피할 수 없다는 후진국 논리다. 유엔 제도 아래에서 중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후진국으로 분류돼 있다. 중국은 G2(주요 2개국)로서 글로벌 파워를 행사하다가도 유엔 기후변화 판에서는 철저히 후진국으로 자세를 낮추며 배출 감축 압박에 대처했다.

이번 유엔 보고서도 ‘중국은 인구 13억명이 넘는 빈국으로 빈곤퇴치가 어려운…’으로 시작한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중국과는 정반대로 2020년 배출전망치(BAU) 대비 30% 감축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배출권 시장은 미국에 대한 유럽의 도전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 정치적 통일을 이룬 유럽연합(EU)은 1997년 교토 기후협약을 이용해 미국에 도전했다. 중국의 부상을 통해 미국을 견제한다는 계획에 따라 중국을 후진국으로 분류, 배출 감축 의무를 면제해줬다. 배출권 거래 시장에서는 유로화만 사용하게 해 달러화 패권을 약화시키려고 했다.

‘탄소배출’ 둘러싼 각축

이에 미국은 교토 체제 참여를 거부하며 어떻게든 중국에 배출 감축 의무를 지우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랜 기간 중국과 협상해 지난해 11월12일 미·중 공동 배출감축안을 이끌어냈다. 이번에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중국 국가단위 탄소배출권 시장 설립을 발표하도록 하기에 이르렀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과 협상하며 중국에 감축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미국의 탄소 감축을 반대해온 미 공화당을 압박해 미국 내 탄소 감축을 밀어붙였다. 동시에 교토 체제와 중국을 지렛대로 미국을 치려는 유럽을 견제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은 탄소 배출을 감축하면 경제발전에 차질이 빚어지고, 이를 무시하면 관세 보복을 당하는 진퇴양난의 처지였다. 강제력 있는 국제조약 진전에 제동을 걸어 시간을 벌려고 애썼다. 지금의 탄소조약은 역사적 배출량을 기준치로 감축하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 배출량이 많은 선진국에 유리하다. 중국의 전략은 자국 배출량을 최대로 늘린 뒤 국제조약에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2000년 미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던 중국의 탄소배출량은 이제 미국의 2배가 됐다.

하지만 새로 설립될 중국 국가단위 탄소배출권 시장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석유나 곡물 등 자원시장에서 보았듯이 세계 탄소배출량의 25%인 100억t 넘게 배출하는 중국은 이의 10%인 10억t의 배출권만 수입한다고 해도 세계 7위 배출국인 한국 총배출량의 1.5배가 넘는다. 중국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배출권 시장의 패러다임이 확 바뀔 수 있다.

한국은 지난 6월 유엔에 새로 제출한 계획대로라면 총 감축목표의 30%인 약 1억t에 해당하는 배출권을 수입해야 한다. 15개국과 양자배출권 협정을 맺어 수입 물량을 확보한 일본과 달리 유엔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2012년 기준 한국은 1000명당 하루 석유 소비량이 45배럴이고 중국은 7배럴이다. 중국이 한국과 같은 수준으로 석유를 소비한다면 7배의 석유가 필요하다. 세계 석유 생산량의 75%에 달하는 양이다. 대체에너지를 개발하지 않고서는 중국의 원활한 경제발전이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10여년간 준비해온 것에 대한 중국의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실력을 쌓았는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중국·EU 견제

중국은 그동안 후진국 지위를 활용해 유엔의 탄소배출권 중 절반 이상을 공급했다. 배출권은 파생금융상품이다. 중국은 막강한 공급력을 바탕으로 JP모간, 도이치증권 등 글로벌 투자은행에 파생금융상품의 ‘생명’인 계약서(ERPA)에 영어와 한문 겸용을 강요해 탄소금융을 배웠다. 배출권가격 하한가 제도를 도입해 관리들이 뇌물을 받고 저가 판매를 못하도록 했다. 2013년 이후 생성되는 배출권에는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을 금지해 배출권 수출을 원천봉쇄했다. 중국에서 생성된 배출권 일부를 의무적으로 칭화대 기후변화연구소에 배당해 칭화대는 세계 최대 유엔 탄소배출권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종합상사가 배출권의 중심이 됐다. 미국의 냇소스라는 탄소 전문업체에 파견나간 3명의 미쓰비시상사 직원이 배출권 금융을 배운 후 동남아시아, 특히 2008~2012년 한국에서 발행한 1억7000만t의 유엔 배출권 상당 부분을 헐값에 구매해 비싼 값에 유럽에 팔아넘겼다.

반면 한국은 불과 524개 기업만 배출권 거래를 할 수 있고, 가격도 t당 1만원으로 묶어버렸다. 일본처럼 기후 금융과 배출권 전문그룹을 양성하고 유엔 테두리 밖의 양자 간 제도를 준비해 배출권을 수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한국의 배출권거래제는 그런 유인을 주지 못하고 있다.

배출권 수입통로 확보해야

교토 체제에서 후진국으로 분류돼 유엔 탄소배출권 사용이 금지된 한국 기업에는 중국이 해외배출권 수입에 나설 경우 치명적인 원가 상승을 일으킬 수도 있다.

미국, 러시아, 일본, 캐나다처럼 교토 체제에서 탈퇴해 요즘 t당 700원에 거래되는 저렴한 유엔배출권을 적극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안정적인 배출권 수입처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배출권 시장에서까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샌드위치 신세가 될 판이다.

백광열 < 연세대·MIT 기후변화와 경제 프로젝트 공동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