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폭증하는 가계부채, 저금리 아닌 경기침체 탓이다
최근 급격히 늘고 있는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가계부채는 올 6월 기준 113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500조원 정도임을 고려하면 GDP의 4분의 3에 이르는 규모다.

통화당국을 비롯해 금융권에서는 흔히 9월 기준금리가 연 1.5%임을 지적하며 저(低)금리를 가계부채의 주원인으로 꼽는다. 물론 금리가 낮아지면 부채가 커지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플레이션을 차감한 실질금리가 낮을 때다. 흔히 저금리라고 생각하는 1.5% 기준금리는 실질금리가 아닌 명목금리다.

작년 하반기부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이고, 담뱃세 인상분을 제외한 물가상승률이 사실상 마이너스(-)로 디플레이션 상황임을 고려하면 명목금리 1.5%도 실질금리 개념에서는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따라서 금리가 낮아서 가계에서 부채를 일으키기 쉽다는 해석은 실제로 적용되기 어렵다.

일반 가계 입장에서 대출을 통한 자금조달 비용보다 높은 투자수익률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려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구입한 자산 가격이 상승해 발생하는 자본이득(capital gains)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로 빚을 내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주식에 투자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또 지금과 같은 경기 침체 상황에서 안정적인 소득이 있는데, 창업을 위해 자금을 빌려 새롭게 투자하려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도 낮다.

실제로 올 2분기 총저축률은 35.3%로 34%대였던 2014년보다 높은 수준이다. 2분기 투자율은 28.0%로 하락하는 추세다. 이렇게 투자에 비해 저축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실질금리가 낮다고 보기는 어렵다.

저금리? 실질금리는 낮지 않아

결국 최근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것은 낮은 명목금리 때문이 아니라 경기 침체에 따라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실질소득 감소는 봉급생활자의 경우 자신의 일자리가 불안해지거나 회사가 문을 닫거나 구조조정에 직면하는 것을 뜻한다. 자영업자라면 매출과 이익이 줄어드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결국 생계를 위한 자금이 더욱 필요해진다. 환언하면 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소득이 감소하자 생계자금 등을 조달하기 위해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뉴스의 맥] 폭증하는 가계부채, 저금리 아닌 경기침체 탓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가계부채 움직임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주택가격 변동이고 두 번째는 실질GDP 증가율로 대표되는 경기의 움직임이다. 일반 가계부채의 많은 부분이 주택 구입에 쓰임에 따라 주택경기가 움직일 때는 오히려 실물경기 자체와는 관계없이 주택가격 변동이 사실상 가계부채의 움직임을 결정해왔다.

2005년부터 2007년 초반까지는 실물경기의 큰 변화 없이 주택가격이 급상승했는데 바로 이 시점이 가계부채가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했던 때다. 2005년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5.2% 정도의 증가율을 보이던 가계부채는 2007년 초반에는 11%대에 이르렀다. 그 무렵 큰 경기 변화가 없었음에도 주택가격지수 상승률은 연간 12%에 육박했다.

자영업자·다중채무자의 생활자금

방향은 반대지만 주택가격 움직임과 밀접한 가계부채 변화는 2011년 말부터 2013년 사이에도 나타나는데, 이때도 GDP 증가율이 크게 변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주택가격 상승세가 약해지자 가계부채 증가율 역시 감소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주택가격은 크게 변동하지 않았는데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실질GDP 성장률이 계속 감소하는 가운데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있다. 실질GDP 성장률의 감소가 본격화한 시기와 가계부채 급증이 시작된 시기가 2014년 1분기를 기점으로 거의 일치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은 가계대출과 사실상 유사한 개인사업자 대출이 증가하고, 투자자금과 생계자금의 구분이 어려운 자영업자 대출이 2012년 197조원 수준에서 2014년 약 237조원에 이를 정도로 3년 사이에 20% 넘게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국내 자영업자 상당수가 사실상 반(半)실업 상태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계부채 상당 부분이 이들의 생활자금으로 쓰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대출받은 흔히 다중채무자로 불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대출자금은 저금리를 활용해 새로운 투자 목적으로 여러 곳에서 자금을 조달했을 개연성보다는, 빈곤계층의 부족한 생활자금 용도로 쓰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기존에 자금을 조달했던 은행권 대출 외에 보험 등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새로운 가계대출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그런 자금이 생계 용도일 가능성을 키운다.

가계부채를 유발하는 핵심 원인이 금리가 아니라 현재의 경기 침체라는 것을 인식하는 건 정책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저금리가 가계부채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경기 침체에도 이자율을 내릴 수 없다는 논거로 흔히 사용된다. 그런데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이 금리가 아니라 사실상 경기 침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의 총량 증가를 보고 현 상태를 저금리로 판단하거나 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취한다면 실물경기를 더욱 위축시키면서 가계부채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

침체된 경기 살리기에 주력해야

이런 관점에서 가계부채 문제는 총량 개념의 접근보다는 가계부채 성격과 채무계층의 상황에 대한 면밀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부채 총량의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올린다는 단순한 접근은 자칫 한계상황에 처한 생계형 자금대출 계층에 더욱 무거운 이자 부담을 지울 수 있다. 가계부채 문제는 부실 채무 발생을 방지한다는 금융회사의 건전성 시각에서 접근하기보다 어려움에 처한 자영업자와 저소득층에게 낮은 금리의 자금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하고 실물경기를 부양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성태윤 <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