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의 실험…'아메바 조직'으로 혁신 가속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창업 당시의 혁신성을 잃어버린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온 네이버가 최근 ‘셀경영’ ‘아메바 경영’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아메바 경영은 조직을 잘게 쪼개 독립채산제로 운영하는 방식을 말한다. 크기가 0.2㎜로 작지만 외부 환경 변화에 신속 대응하는 단세포 동물 아메바의 생존 원리에서 착안한 것이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렸던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이 조직의 혁신성을 유지하기 위해 창안한 방식이기도 하다.

○자율성 높여 환경변화에 대응

네이버가 작년 5월 ‘셀’ 조직 개편 이후 신규 출시한 서비스는 10개에 달한다. 평균 1.5개월당 하나씩 새로운 서비스를 낸 셈이다. 셀은 서비스 단위 조직으로 일종의 사내 벤처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출시한 간편결제 서비스인 ‘네이버페이’는 ‘네이버페이 셀’이 운영하는 식이다. 기획 예산 구매 등 주요 경영 사안을 ‘셀 리더’가 독자적으로 결정해 시행한다.

전에는 본부→센터→실→팀 등으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명령 체계를 갖고 있었다. 웬만한 사안은 단계별로 전결을 받아야 했다. 주요 서비스를 하나 출시하는 데만 반년 이상 걸렸다. 네이버 관계자는 “서비스 기획 부문이 셀 조직으로 바뀐 뒤 의사 결정 속도가 크게 빨라졌다”고 말했다.

○새 서비스 3개월 만에 ‘뚝딱’

최근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인기 연예인의 실시간 모바일 방송 애플리케이션(앱)인 ‘V’는 출시 첫날 아시아 유럽 중동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170개국에서 다운로드 61만건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V앱을 준비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개월. 글로벌 서비스 운영 노하우와 개발 경험을 갖춘 서비스 매니저, 콘텐츠 매니저, 디자이너, 개발자 등이 신속하게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짧은 기간 내 완성도 높은 서비스를 선보였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20여개의 셀 가운데 성장성이 높은 곳은 분사 직전 단계인 ‘사내 독립기업(CIC)’으로 전환해준다. 지난 2월 처음 도입한 CIC는 별도의 자본금을 두고 신규 채용 및 보상 체계 등까지 따로 갖추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CIC는 ‘네이버 웹툰’ ‘라인 웹툰’ 등을 서비스하는 ‘웹툰&웹소설’ 하나다. CIC의 수장은 ‘셀 리더’가 아닌 ‘대표’라고 불린다.

네이버 최초의 CIC가 된 웹툰&웹소설은 지난 6월 말 인도네시아 라마단 기간(7월16~21일)에 맞춰 현지 TV 광고를 추진했다. 남은 기간은 단 3주. 통상 제작에 필요한 예산 편성, 영상 촬영 및 편집, 현지 방송사와 협상 등에 수개월이 걸린다. 그러나 CIC 운영 덕에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김준구 웹툰&웹소설 대표는 “혁신 기업의 경쟁력은 회사가 직원을 믿고 최대한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할 때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진의 ‘위기의식’ 반영

조직 운영 전략이 바뀐 데는 “이대로 가면 위기를 맞는다”는 이해진 이사회 의장의 위기의식이 반영됐다. 그동안 네이버에는 연매출 3조원에 달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추가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조직이 관료화되고 있다는 내부 반성도 잇따랐다. 전 직원에게 혁신 마인드를 주입하기 위해선 조직 운영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회사 관계자는 “조직 운영뿐 아니라 신사업 발굴 측면에서 네이버의 실험은 계속될 것”이라며 “외부환경 변화를 가장 빠르게 수용할 수 있는 조직 운영을 통해 모바일 생태계를 주도한다는 전략”이라고 소개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