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유통공룡'의 몰락] "시장 1위인데 뭘 바꿔"…'성공의 덫'에 걸린 테스코
영국 최대 유통기업인 테스코가 ‘성공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고 있다. 최근 경영정상화를 위해 알짜 해외 자회사인 한국 홈플러스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팔 수밖에 없었던 것도 1등 자리에 안주하면서 기존의 확장 일변도 전략을 고집했기 때문이란 게 외신과 경영전문가들의 평가다.

테스코는 지난해 세전 이익 기준으로 63억8000만파운드(약 11조5800억원)의 손실을 냈다. 1919년 창업 후 96년 만에 최악의 실적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유통시장의 ‘변화’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테스코 등 대형마트보다 품목 수를 줄이는 대신 싼값에 물건을 파는 저가형 마트가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독일의 알디와 리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테스코의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잠식했다.

그런데도 테스코는 기존 전략을 바꾸지 않았다. 새로운 매장을 계속 늘려갔다. 신규 매장을 내면 부동산 가격이 올라 이익을 내던 과거 전략이 계속 먹힐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매장별 수익성은 악화하는데 숫자는 늘어만 갔다.

지난해 터진 대규모 회계 부정 스캔들이 결정타였다. 테스코가 지난해 상반기 영업이익을 2억5000만파운드(약 4500억원) 부풀렸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투자자들은 테스코에 등을 돌렸다.
[영국 '유통공룡'의 몰락] "시장 1위인데 뭘 바꿔"…'성공의 덫'에 걸린 테스코
테스코, 온라인몰·獨 저가형 마트 공세에도 매장 확장만 고집

테스코는 4년 전까지만 해도 성장가도를 달렸다. 1997년부터 2011년까지 14년간 재직한 테리 리히 테스코 최고경영자(CEO)는 재임 기간 중 매출을 약 5배 키웠다. 테스코의 ‘황금기’였다. 그동안 많은 혁신이 이뤄졌다. 일례로 유통업계 처음으로 마일리지 카드를 내놓아 큰 호응을 얻었다.

테스코는 이 기간 영국 3위 유통업체에서 영국 1위이자 세계 3위 유통업체로 급부상했다. 미국 월마트, 프랑스 까르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3대 유통업체가 됐다.

테스코가 자만에 빠진 순간 위기는 성공보다 빠르게 왔다. 테스코가 1등을 유지하는 동안 시장은 급변했다. 낮은 가격을 앞세운 독일계 저가형 마트가 시장을 비집고 들어왔다. 알디, 리들 등 저가형 마트들은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품목을 줄이는 대신 물건 가격을 낮췄다.

알디와 리들의 영국 시장 점유율은 9.7%로 2년 전에 비해 약 2배가 됐다. 영국 4위 대형마트인 WM모리슨(10.8%)과 맞먹을 정도가 됐다.

◆기존 전략에 안주한 ‘자만 경영’

바뀐 시장 환경에도 테스코는 과거의 성공 전략을 고수했다. 매장 수를 공격적으로 늘리는 것이 테스코의 기존 전략이었다. 테스코가 매장을 내면 해당 용지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덩달아 자산가치도 올랐다. 매장별 수익성이 뒷받침될 때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경쟁이 심해지고 온라인 쇼핑 확대 등 소비자의 구매패턴이 바뀌면서 수익성은 점점 떨어졌다. 수익성 없는 매장이 늘면서 부채비율이 올라갔다. 무디스는 올 1월 테스코의 신용등급을 기존 ‘Baa3’에서 ‘Ba1’으로 떨어뜨렸다. ‘정크(투자 부적격)’ 수준이다. 무디스는 “다른 저가형 마트들이 시장점유율을 높여 테스코의 수익은 더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채비율이 높아 신규 투자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신규 투자를 못해 매장 내 서비스의 질이 떨어졌다. 테스코는 지난 6월 영국 소비자 만족도 조사에서 영국 내 8개 대형마트 중 꼴찌에 이름을 올리는 굴욕을 맛봤다.

◆“기업은 혁신이 없다면 도태될 뿐”

계속되는 실적 악화에 지난해 7월 테스코는 새로운 CEO를 선임했다. 식품 및 생활용품 기업인 유니레버 출신의 데이브 루이스다. 그러나 악재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9월 테스코는 상반기 영업이익을 2억5000만파운드(약 4500억원) 과대 추정했다고 인정했다. 테스코의 추락을 알린 결정타였다. 발표 직후 주가는 10% 넘게 추락했다. 이때 날아간 시가총액이 분식회계 규모의 10배에 달한다.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존 개퍼는 테스코의 추락은 결코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들은 몸집을 키우는 게 스스로를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기업은 혁신이 없다면 도태될 뿐”이라고 꼬집었다.

기업들이 성공하는 동안 자만에 빠져 자멸의 씨앗을 키운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테스코의 사례처럼 과도한 자신감에 경쟁사를 무시하거나 자사의 전략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게 대표적이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테스코를 영국 크리켓 팀에 비유했다. 이 신문은 “크리켓의 본고장인 영국 국가대표팀은 이어지는 성적 부진에 감독을 교체했지만 올해 크리켓 월드컵에서 방글라데시와 뉴질랜드에 대패했다”며 “감독을 바꾸는 정도만으론 혁신이 어렵다는 교훈을 테스코가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수지/김병근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