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미래 전략가가 없다
미국 국방 및 군사전략의 대부로 불리던 앤드루 마셜이 올해 초 은퇴했다. 그의 나이 93세.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인 1973년부터 미 국방부 장관 직속 내부 싱크탱크인 ‘총괄평가국(ONA)’을 이끌던 전략가다. 그동안 대통령은 8번, 국방부 장관은 13번 바뀌었다. ONA의 임무는 20~30년을 내다본 군사분야 미래 예측. 장관과 백악관에 보내는 보고서는 제출 시한이 없는 질 우선의 원칙이다. 중국의 부상과 군사혁신(RMA) 예측 및 대응책 마련 등이 마셜의 업적으로 꼽힌다.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다이 마스터 ‘요다’라는 별칭에서도 그의 영향력이 엿보인다. 이런 조직, 이런 사람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을까.

위기의 본질은 ‘미래 불안’

미래 대응에 고심하기론 작은 나라라고 다를 게 없다. 올해로 독립한 지 50년이 되는 싱가포르가 대표적 사례다. 1980년대 국방부에서 셸(Shell)의 도움으로 미래 시나리오 기법에 기반한 전략 수립을 시도했던 국가다. 1995년 총리실 산하 ‘시나리오사무국’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지금은 ‘전략정책국’이란 이름으로 국가전략 개발을 주도한다. 최근 싱가포르는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잘 헤쳐 나갈 것이란 낙관론의 밑바탕엔 미래 대응 역량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한국 경제 위기론은 단지 현상적 경제성적 악화 때문만은 아니다. 미래 대응 능력에 대한 우려가 위기감을 더해주는 양상이다. 당장 비상등이 켜진 수출이 그렇다. 이것이 구조적 문제라면 단기적 대응으로 해결될 게 아니다. 한국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한다는 중국 시장도 마찬가지다. 중국 경제의 순조로운 조정만을 고대하고 있을 수는 없다. “중국은 예측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긴 호흡의 중국 연구와 전략 개발이 절실한 것 아닌가.

한계에 직면한 현재의 수출품목을 무엇이 이어갈지에 이르면 더 답답해진다. 정권마다 미래 먹거리를 찾겠다고 성장동력 소동을 벌인 지도 벌써 20여년이다. 그러나 어떤 정권도 과거 중공업으로의 산업구조 전환 같은 혜안이나 절박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권마다 오락가락한 게 전부다.

“생각할 시간이 없다”

박근혜 정부라고 다를 게 없다. 미래창조과학부라는 거창한 부처를 만들면 뭐하나. 미래 전략가 역할을 하는, 생각하는 조직과 사람이 있기는 한가. 각 부처엔 또 그런 조직과 사람이 있는가. ‘퍼스트 무버’를 외치는 정부가 정작 자신은 그럴 준비가 전혀 안돼 있다. 독창적 미래 대응 능력도 없이 백날 퍼스트 무버를 외쳐본들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미래마저 선진국 베끼기에 바쁜 또 하나의 ‘추종자 전략’에 불과하다.

세종시 탓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한탄하는 관료가 적지 않다. 과거 싱크탱크 역할을 하던 정부연구소도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관료도 연구소도 위에서 오더가 떨어지면 허겁지겁 보고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는 판이다. 오죽하면 “다음 정부 때는 생각하는 정부 조직을 좀 만들어 달라”고 하소연하겠나.

정부 내부에는 싱크탱크가 없고, 정부 밖에서는 정체도 불분명한 사이비 싱크탱크가 판친다. 여기서 국가 미래 전략이 나올 리 없다. 그러다 무슨 문제가 터질 때마다 컨트롤타워 타령이다. 생각하는 조직과 사람이 진짜 컨트롤타워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