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감정이 억압되면 몸은 질병으로 반응한다
양순한 성격의 인디언계 여성 메리는 손가락 끝에 엄청난 통증을 느끼다 피부 경화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아교질의 과다한 축적으로 피부 일부분 또는 전신의 피부와 식도, 심장 등 장기가 딱딱해지고 두꺼워지다 죽음에 이르는 질병이다. 류머티즘 관절염이나 당뇨병, 알츠하이머병 같은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이다. 자가면역질환은 환자 자신의 면역계가 신체를 공격해 관절과 신체 결합조직을 손상시키고 나아가 눈, 신경, 피부, 간, 뇌 등 모든 신체 기관을 망가뜨린다.

어린시절 양부모에게 학대받은 메리는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그는 오직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배려했을 뿐 자신의 감정을 배려할 겨를이 없었다. 피부 경화증은 그의 그런 의무감을 몸이 거부한 결과였다.

내과전문의인 게이버 메이트는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에서 “자기 희생적인 대처방식을 성인이 돼서도 바꾸지 않으면 몸이 이를 거부해 스스로를 공격한다”며 “감정의 억압이 질병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감정을 억압하면 스트레스가 높아지면서 질병에 맞서 싸우는 신체의 방어체계가 무력화된다. 억압이란 감정을 의식에서 분리해 무의식의 영역으로 내쫓는 일인데, 이때 면역체계도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악성 종양(암)에 걸린 많은 사람이 심리적·신체적 고통이나 분노, 거부감 같은 감정에 무의식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를 나타냈다”고 지적한다. 난치병에 걸린 천재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 야구선수 루 게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등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며 감정의 고통이 신체 질환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