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철도 황해 종착역인 다롄의 1910년대 모습. 돌베개 제공
시베리아 횡단철도 황해 종착역인 다롄의 1910년대 모습. 돌베개 제공
블라디보스토크는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동쪽 기착지다. 1905년 완공한 블라디보스토크 철도역은 항구에 접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의미는 ‘동방을 지배하라’다. 동해와 태평양에 진출하려는 러시아제국의 의지를 담았다. 블라디보스토크가 ‘극동 러시아’의 심장이 된 것은 태평양에 진출할 수 있는 출구였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동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책마을] 유라시아·태평양 잇는 '문명의 바닷길' 환동해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는 《환동해 문명사-잃어버린 문명의 회랑》에서 “‘환동해(環東海)’ 해역이 다양한 문명의 바닷길이었다”며 실크로드 등 육지의 문명 통로만 강조한 주류적 인식에 수정을 요구한다. 역사적으로 환동해는 담비의 길, 해삼의 길, 식해의 길, 곤포(다시마)의 길, 소그드 상인의 길 등을 통해 대륙과 해양을 망상으로 연결했다. 저자는 한반도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해양으로의 진출’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왜 하필 환동해일까. 환동해 해역은 한국 북한 러시아 일본이 에워싼 동해, 홋카이도와 사할린의 해협 건너 오호츠크해, 캄차카 반도 너머 아메리카 대륙과 연결되는 베링해까지 이른다. 환동해는 태평양으로 열려 있으며, 두만강 하구와 연해주 지역에서는 만주와 몽골, 시베리아 등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다. 결국 환동해 문명사는 바닷길을 통한 문명 교섭의 역사이자 ‘관계의 역사’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하지만 국민·국가적 관점에서 환동해는 국가의 영토 개념으로 환원되고, 문명사적 의미를 잃게 된다. 한국에서는 ‘동해’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일본해’라고 부른다. 러시아에서 이 바다는 ‘차르의 바다’였고 ‘소비에트의 바다’였다. 저자가 동해와 일본해가 아닌 ‘청해(靑海)’ 또는 ‘동북아시아해’ 등 중립적인 명칭을 쓰자고 주장하는 이유다.

저자는 환동해의 의미를 역사적으로 재조명한다. 청을 건설한 여진족은 육지에서 농경문화를 이루며 살았다. 그런데 11세기 고려와 일본 역사에 동북 여진의 침략이 같은 시기에 기록된다. 1018년 동북 여진이 우산국(울릉도)을 침략했다는 내용이《고려사절요》에 실렸고, 1019년에는 여진족으로 보이는 무리가 쓰시마섬을 거쳐 이키섬과 하카타, 마쓰라 지역을 초토화했다는 ‘도이의 난’이 일본 사료에 남아있다. 만주지역에 살던 여진족이 두만강 하구와 연해주에서 동해 루트를 거쳐 울릉도와 일본에 드나들었음을 추정하게 하는 역사적 기록이다.

18세기 청의 강희제는 홋카이도와 사할린에 탐사대를 보내 북방 해양을 경략하고자 했다. 청이 서진(西進)해 거대한 대륙의 제국을 건설하고자 한 이면에는 환동해 권역을 다스리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환동해 문명사가 역사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한반도를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해 경제 개발의 새 동력을 찾겠다는 환동해 네트워크 기반의 국가 전략으로 설명한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