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후 밤거리 방황…할인매장 창업직원에 100% 권한…철저한 성과주의…관광객 필수 '쇼핑명소'로 자리매김
‘쇼핑’이 아니라 ‘탐험’이다. 일본 잡화 유통점 돈키호테에서 손님은 결코 원하는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없다. 화장실 휴지, 과자, 장난감부터 전자제품, 롤렉스 시계, 프라다 가방까지 온갖 물건이 뒤죽박죽 뒤섞인 채 무질서하게 진열돼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압축 진열’ 혹은 ‘정글 진열’ 방식이다. 이런 독특한 매장 운영 방식을 내세운 야스다 다카오 돈키호테 창업자는 일본 유통업계의 이단아로 통한다.

돈키호테는 쇼핑점을 넘어 하나의 명소가 됐다. 2011년 일본을 찾은 미국 팝스타 레이디 가가가 따로 시간을 내 들를 정도다. 외신은 최근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돈키호테를 필수 코스 중 하나로 삼으며 일본인보다 20배나 많은 돈을 쓰고 간다”고 보도했다. 소비세 인상 이후 일본의 국내 소비가 주춤해진 가운데서도 돈키호테는 올해 26년 연속 매출 및 이익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정글식 진열과 심야 영업의 매력

1973년 게이오대 법학부를 졸업한 야스다 창업자는 부동산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부도가 나면서 수년간을 도쿄의 밤거리에서 방황했다. 한때는 마작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1978년 당시 유행하던 할인매장을 눈여겨보고 ‘도둑시장’이란 이름의 가게를 열었다. 할인매장이라면 자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안이한 발상이었다.

상품은 팔리지 않았다. 재고는 나날이 늘어갔다. 점포 경영에 대한 노하우도 없었고 자본도 부족했다. 매출이 줄다 보니 새로운 상품을 구입할 돈도 모자랐다. 상품 구색은 빈약해져만 갔다.

야스다 창업자는 덤핑상품, 반품상품, B급상품으로 활로를 모색했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파산한 기업이 덤핑으로 처분하는 상품은 구입 가격이나 시기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구할 수 있을 때 구입해 매장에 쌓아놓는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질서정연한 진열은 불가능해졌다. 매장은 창고처럼 변해갔다.

돈키호테의 또 다른 특징인 심야영업도 도둑시장을 운영하던 어느 날 밤의 일이 계기가 됐다. 직원을 둘 처지가 아니었던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영업시간이 지난 후 가게 셔터를 열어놓은 채 상품 정리를 하고 있었다. 한밤중까지 불이 켜진 매장이 신기하다는 듯 지나가던 사람들이 기웃거리고 시작했다.

한 푼이 아쉬운 그로선 말릴 이유가 없었다. 손님들은 매장 안을 둘러보더니 온갖 기이한 물건들을 찾아냈다.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 한참 전에 유행하던 옷들을 보면서 무척이나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

야스다 창업자에겐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그는 “소비자들은 우연히 만나는 아주 사소한 즐거움 또는 예기치 못한 소박한 재미를 통해서도 만족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또 심야 고객들은 마음이 풀어져 지갑 끈을 쉽게 푸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 때문에 돈키호테에서 파는 상품의 가격은 오후 6시가 지나면 낮보다 20% 정도 올라간다.

직원에게 100%에 가까운 권한 부여

1989년 그는 돈키호테 1호점을 냈다. 도둑시장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심야영업과 정글식 압축 진열을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이번엔 직원들이 문제였다. ‘보기 어렵고, 고르기 어렵고, 사기 어려운’ 매장이라는 역발상을 직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사원들의 반발에 야스다는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하나의 회사에 사장은 하나다. 다른 사람은 모두 샐러리맨이다. 샐러리맨은 아무리 얘기하고 매뉴얼을 만들어줘도 진의가 전달되지 않는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모의체험을 시키는 방법밖에는 없다.”

사원에게 모든 것을 맡기자 직원들이 달라졌다. 적극성과 열정이 살아났다. 돈키호테는 각 매장에 100%에 가까운 권한을 준다. 상품 구입에서부터 판매가격 결정, 매장 연출, 아르바이트생 관리 등에 본사가 간섭할 수 없다. 값싼 상품부터 수백만원의 고가품까지 입사 1년 미만의 직원에게 맡긴다.

대신 철저한 성과주의를 적용했다. 실적에 따라 6개월마다 연봉이 조정된다. 점장이 점원으로, 점원이 점장이 되기도 한다. 성적이 좋으면 30대 초반에도 연봉 1000만엔(약 9840만원)을 벌 수 있는 곳이 돈키호테다. 다른 매장 직원에게 도전장을 보내는 문화도 있다. ‘내년 실적에선 내가 당신을 능가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도전받은 사람은 자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다.

“무너진 돌다리도 건너버릴 성격”

돈키호테라는 상호는 그의 저돌적인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어린 시절의 야스다 창업자는 골목대장으로 유명했다. 한편으론 쉬는 시간에 혼자 조용히 독서를 즐기는 독서가이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야스다가 중학생일 때 어안이 벙벙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야스다가 어느 날 “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싶다”고 한 것. 공업고등학교에서 전기 과목을 가르치던 그의 아버지는 이에 “나는 돌다리를 두드릴 정도로 신중한 유형인데, 이 녀석은 무너진 돌다리도 그대로 건너버릴 녀석”이라고 했다.

지방에서 도쿄로 상경한 것도 나름의 야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게이오대 법학부에서 그는 적응하지 못했다. 세련되고 곱상한 도시 청년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는 “10대 시절 나는 사회에 적합하지 않구나 하는 열등감이 있었다”며 “한편으론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자부심도 있었다”고 당시를 돌아보며 말했다.

점포 하나에서 출발했던 돈키호테는 지금 총 309개 매장을 갖고 있다. 해외 점포도 14개에 달한다. 하지만 지난 6월 야스다 창업자는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오하라 고지 사장에게 물려주고 돈키호테그룹의 모든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오래전부터 만 65세에 은퇴를 결정했다”며 “당초 계획에서 1년 지연됐지만 기력과 체력이 모두 충분할 때 은퇴하는 것이 돈키호테의 장기 번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