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9월2일 오후 4시43분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금호산업 채권단회의. 각 채권기관에서 참석한 30여명의 실무자 사이에 의외의 인물이 앉아 있었다. 우리은행에서 오랫동안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지휘한 신진기 기업개선부 영업본부장이었다. 1956년생으로 금융권에선 구조조정 역사의 산증인으로 통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이날 채권단회의에서 “채권단에서 공방만 하며 시일을 끌다간 가격이 떨어지고 기업가치는 망가진다. 속전속결로 진행해 연내 금호산업을 매각해야 한다”고 작심한 듯 발언을 쏟아냈다. 신 본부장은 “금호산업은 우선매수권이 달린 매물이고 이미 호반건설이 시장가격(주당 3만900원)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제3자에게 이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팔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경험상 이렇게 흘러가면 재매각 때도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 본부장은 2010년 1월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금호산업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개시를 조율한 인물인 만큼 발언에 무게감이 남달랐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금호산업 채권단은 올해 1월 매각공고를 시작으로 한 차례 유찰을 거친 뒤 지분 ‘50%+1주’에 대한 우선매수권을 가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금호산업 채권단 가운데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재무적투자자(FI)들은 1조원 안팎의 매각가격을 주장해왔다. 박 회장이 제시한 희망가격(6503억원)보다 최대 3500억원가량 차이가 난다.

신 본부장은 “채권단 모두 높은 가격에 팔고 싶은 마음은 같지만 2010년 암담했던 상황을 생각하면 이 정도 회수율은 다행스러운 것”이라며 “산업은행이 금호그룹 계열사였던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FI에 일정 부분 손실 보전을 해주는 등의 노력을 한 덕분”이라고 채권단을 설득했다.

금호산업 채권단은 결국 75% 이상의 찬성으로 박 회장과의 재협상을 결정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금융권 노장이라 할 수 있는 신 본부장의 발언 이후 채권단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연내 매각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내다봤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