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형 ISA가 성공하려면
일본에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란 말을 처음 접한 곳은 다름 아닌 지하철역이었다. 지난해 초 일본 금융업체들은 ISA가 새로 나왔음을 알리는 광고물을 지하철역에 내걸기 시작했다. 광고의 영향이었을까. 신상품은 의외로 빨리 시장에서 자리 잡았다.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만능 통장’이란 점이 일본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평가다.

일본의 ISA는 가입자는 830만명, 수탁액은 3조엔(약 29조3000억원)이 넘는다. 일본 자본시장 부활을 이끄는 한 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ISA의 덕을 본 나라는 일본뿐이 아니다. ISA의 원조국은 영국으로 1999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엔 캐나다가 뒤를 이었다. 최근엔 한국도 ISA의 도입방안을 발표, 국제적인 흐름에 동참하게 됐다.

한국엔 이미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금융상품이 많다. 그럼에도 ISA가 화제가 되는 것은 특정 금융상품이 아니라 ‘금융상품의 바구니’에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ISA라는 바구니에 예·적금,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자유롭게 골라 담으면 된다. 세제혜택은 바구니에 담긴 금융상품 전체에서 얻어진 순이익에 대해 주어진다.

금융상품이 아니라 금융상품의 바구니에 세제혜택을 주는 게 왜 바람직할까. 우선 개인의 합리적 자산관리 습관을 유도할 수 있다. ISA 시대가 되면 투자자들은 금융상품으로 구성된 자신만의 맞춤형 바구니를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새로운 세제혜택 상품이 무엇인지, 얼마만큼의 자금을 넣어야 하는지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만큼, 예금과 적금밖에 모르는 일반투자자들을 금융투자상품으로 손쉽게 끌어들일 수 있다.

‘손익통산’도 ISA의 장점으로 꼽힌다. 어느 투자자가 요즘 유행하는 두 종류의 ELS에 투자해 한 상품에서는 이익을 얻고 다른 상품에서는 똑같은 금액만큼 손실을 보았다고 가정해 보자. 손익통산을 인정하지 않는 기존 세제에서는 이익을 본 상품에 세금을 내야한다. 실질적인 소득이 없는 투자자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다. 한국형 ISA는 다르다. 과세의 기준이 계좌에 포함된 전체 금융상품에서 발생한 이익과 손실을 합산한 순이익이다. 이 경우엔 순이익이 ‘제로(0)’인 만큼 내야 할 세금도 없다.

모든 금융상품에 대한 손익통산이 이뤄지면 한국 자본시장 세제의 근간이 바뀐다. 현재의 거래세제가 자본이득세제로 전환되는 것이다. 한국형 ISA는 근본적인 세제개혁 이전에 손익통산이 적용될 수 있는 영역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금융 소비자를 위한 금융업권 간 경쟁의 장이 마련됐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한국형 ISA는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영역이 다른 금융회사들이 모두 취급할 수 있다. 세제혜택 상품이 많은 업권에 유리했던 이전과 달리 ‘게임의 룰’이 공평해진 것이다. 앞으로는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금융상품 바구니를 제안할 수 있고 자문 능력도 갖춘 회사로 투자자들이 몰릴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한국형 ISA 제도가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다. 전 국민이 대상인 외국과 달리 가입대상을 제한했다는 점이 아쉽다. 2018년 12월을 일몰 시점으로 정한 것도 문제다. 운영기간을 불과 3년으로 설정한 것은 소극적인 접근이 아닌가 싶다. 영국은 기한 없이, 일본은 10년을 기한으로 이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번 한국형 ISA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정책당국의 많은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차질 없는 입법화가 이뤄져 가계의 노후소득을 풍족하게 하는 발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인석 < 자본시장연구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