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자존심 건 '랩 배틀' 개막
초저금리로 갈 곳을 잃은 자산가들을 잡기 위해 증권사들이 종합자산관리서비스인 ‘랩어카운트’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과거 주식에 집중 투자하고 포트폴리오 구성은 외부에 맡기는 랩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엔 증권사 본사의 전문팀이 직접 자산배분 전략을 짜는 랩 상품이 출시되고 있다.

○인기몰이 나선 랩 상품

3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 랩 상품의 계약자산(5월 말 기준)은 81조929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상 처음으로 80조원대를 돌파한 것으로 올 들어서만 10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매달 계약액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연말까지 90조원에 육박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고객 수도 증가하고 있다. 2012년 증권사들이 랩 계좌에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종목을 집중적으로 담았다가 주가 급락으로 대규모 손실이 나면서 고객 수는 100만명에서 78만명으로 급감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인기를 회복하면서 122만6480명으로 치솟았다.

‘포장지로 싸다’는 의미의 랩(wrap)은 증권사가 고객과 투자일임계약을 맺고 가장 적합한 포트폴리오에 따라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말한다. 펀드랩, 주식랩, 채권랩, 상장지수펀드(ETF)랩 등 특정 자산에 집중 투자하는 랩이 대부분이지만 최근엔 주식, 펀드, 채권, 주가연계증권(ELS) 등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하는 종합자산관리 랩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증시 변동성이 커지고 금융상품이 복잡 다양해지는 상황을 감안한 것이다.

삼성증권의 POP UMA(Unified Managed Account)가 대표적이다. 다양한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짜주는 종합자산관리 랩으로는 지난해 처음 출시됐다. 올 들어서만 2조원가량의 자금을 모아 지난 27일 기준 계약자산이 2조3000억원에 이른다.

삼성증권식 랩 전략은 다른 증권사로 확대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1일 종합자산관리 랩 ‘신한 EMA(Expert Managed Account)’를 출시, 삼성증권에 도전장을 내민다. 본사 투자상품서비스(IPS)본부가 지난 3년8개월간 시장변화에 따른 자산배분과 상품 전략을 수립해온 결과물을 종합자산관리 랩 형태로 내놓은 것이다. 랩 안에 담은 상품의 매매수수료가 발생하지 않아 추가 비용 없이 수시로 자산 조정이 가능한 상품이다. NH투자증권도 올초 포트폴리오솔루션부를 신설하고, 본사가 직접 운용하는 자산배분형 랩의 연내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본사의 리서치 역량과 지점 프라이빗뱅커(PB)의 자산관리 역량을 결합해 고객 맞춤형 자산배분 포트폴리오를 짜주는 ‘한국투자마이스터랩(PB)’을 지난 5월 출시한 이후 1631억원가량 판매했다.

○신속한 위험관리가 강점

종합자산관리 랩은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신속한 위험관리가 가능한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기온창 신한금융투자 투자자산전략부서장은 “주가 하락시 즉각적으로 자산 비중을 조절할 수 있어 변동성 관리가 쉽다”며 “상품 만기 때마다 지점을 방문하는 게 어려운 고액자산가에게도 일임계약을 통해 관리해주는 랩이 편리하다”고 말했다. 다만 일반 펀드보다 비싼 수수료는 감안해야 한다. POP UMA는 연 2%가량의 일임운용 수수료를 내거나 연 1%의 기본수수료에 최대 3%의 성과보수 수수료를 내는 방식이 있다.

표준화된 자산관리 랩이 초고액자산가(VVIP)를 유인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반적으로 특정 자산별 랩의 최소 가입금액은 1000만원, 종합자산관리 랩은 1억원 이상이다. 이경민 KDB대우증권 PB클래스 갤러리아 이사는 “수십억원대 이상의 자산가들은 각자 자산배분을 한 상태에서 고수익 사모상품이나 절세 목적의 금융상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