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나홀로족' 직장인의 비애
한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인 ‘나혼자 산다’는 독신생활을 즐기는 남녀의 좌충우돌 ‘솔로 생활기’를 담고 있다. 독신 남녀와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세태를 반영해 혼자 사는 연예인의 일상을 재미있게 그려 공감대를 얻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연예인은 혼자 사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피규어(영화, 게임 등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본뜬 인형) 수집에 열을 올린다. 세들어 살던 집이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집을 비워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여기저기 다른 집을 알아보는 모습도 나온다. 우리 주변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일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2015년 1인 가구 비중은 27%, 총 507만가구다. 통계청은 이 비율이 2020년에 29.6%까지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나홀로족’이 ‘혼밥(혼자 밥 먹기)’을 하고, 힐링(치유)을 위한 여행을 떠나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나홀로족 가운데 경제력까지 갖춘 나홀로 직장인은 한국 소비문화 전반에서 변화를 이끌고 있다. 가공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고,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데서 벗어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요리강좌에 등록하고, 동호회를 찾아 같은 취미가 있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한다.

학교 앞 맴도는 ‘피터팬 직장인’

지방 출신의 한 대기업 직원인 김 대리(32)는 대학 신입생 때부터 자신이 졸업한 학교 앞을 벗어난 적이 없다. 회사는 강남이지만 지금도 사는 곳은 강북 모교 앞 원룸이다. 출퇴근으로 매일 2시간씩 길에서 보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결혼할 때까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김 대리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술집, PC방 등 추억의 공간이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친구도 많다. 모바일 메신저로 시간날 때마다 대학 시절 친구들을 불러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옛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 학교 앞 유흥가엔 김 대리와 같은 피터팬 직장인을 겨냥한 바 등 분위기 좋은 술집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보드카, 양주 등을 팔면서 LP플레이어로 분위기 좋은 재즈나 록 음악을 틀어주는 이런 술집은 대학생 10~20명이 몰려와 왁자지껄 떠들며 술을 마시는 일반 가게와 차별화된다.

김 대리와 비슷한 이유로 학교 앞을 떠나지 못했던 광고회사 그래픽 디자이너 윤 대리(30)는 다음달 지금 살고 있는 집 인근의 복층 오피스텔로 이사하기로 했다. 사내에서 소문난 ‘몸짱’인 그는 방에 턱걸이 봉과 실내 평행봉을 놓고 맨손 운동을 한다. 윤 대리는 사이클도 두 대 갖고 있다. 한 대는 롤러(뒷바퀴를 고정해 실내에서 탈 수 있도록 제작한 기구)를 달아 방에서 타고, 다른 한 대는 밖에서 이용한다. 독서광인 그의 방에는 늘 책이 굴러다닌다. 지금의 원룸에선 도저히 짐을 정리할 수 없었다.

복층 오피스텔이 혼자 살기엔 조금 넓은 게 아닌가 싶지만 취미를 편하게 즐길 생각에 마냥 즐겁다.

집이야, 회사 사랑방이야

서울 시내 한 대기업에 다니는 임 대리(33)는 올초 회사 근처의 원룸을 얻었다. 하루 왕복 2~3시간이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아까웠고, ‘장가를 안 갈 거면 독립부터 하라’는 부모님의 성화도 한몫했다. 본격적으로 솔로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설렘에 큰 방을 구했고, 인테리어도 본인이 직접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그러나 요즘 부모님 품을 떠나기 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를 겪고 있다. 술김에 별 생각없이 동료 팀원을 방으로 데려온 이후 그의 원룸이 팀 사랑방이 돼버린 것.

팀장은 회식만 하면 “임 대리 방으로 2차 가자. 좋지?”를 외친다. “방문 비밀번호가 뭐야. 점심 먹고 잠깐만 자고 오게”라거나 “임 대리, 오늘 하루 자고가도 괜찮지” 등 상사의 부탁 아닌 부탁도 이어진다. 임 대리는 요즘 ‘회사 근처 집을 공개한 내가 문제였다’고 곱씹으며 어디로 이사를 갈지 고민 중이다.

강아지와 함께 외로움 달래요

한 증권사에 근무하는 싱글남 최 대리(34)는 최근 새식구가 생겼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여동생이 갑자기 해외 지사에 발령나면서 그녀가 키우던 두 살짜리 강아지 ‘뭉치’를 넘겨받은 것.

대학에 입학한 뒤 14년간 혼자 살아온 그에게 ‘강아지 아빠’가 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식사도 제때 챙겨야 했고, 뭉치가 용변을 보면 뒤처리도 해야 했다. 한 번씩 산책이라도 시키면 몸은 더 피곤했다. 출근할 때면 강아지가 끙끙거리며 그의 애를 태웠다. 그래도 집에만 들어오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리는 뭉치는 금세 최 대리의 동반자가 됐다.

얼마 전 강아지 때문에 애가 타는 경험도 했다. 더운 여름 날씨에 혼자 집을 지키던 강아지가 퇴근해 돌아와보니 구토를 한 채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다행히 재빨리 동물병원으로 옮겨 별 탈은 없었지만 최 대리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눈물이 핑 돌았어요. 어머니가 입원하셨을 때도 울진 않았는데.”

자유만큼 커진 책임…낭패 겪기도

한 의류업체에 다니는 싱글남 이 대리(30)는 한 달 전 부모님과 살던 집을 나와 회사 인근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부모님 집에서 3년 동안 출퇴근하면서 열심히 전세금을 모았다.

독립 초기 여유를 만끽할 수 있어 좋았던 이 대리는 요즘 곁에 부모님이 없어 낭패를 자주 겪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늘어난 지각 횟수. 예전엔 술 마시고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아침이면 어머니가 꼬박꼬박 깨워줬다. 요즘엔 휴대폰 알람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늦잠자기 일쑤다. 지난달에는 네 번을 지각해 팀장에게 경고를 받았다. 스스로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세간을 갖추는 것만 해도 만만찮았다. 그동안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어머니한테 너무 의존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에서 체육과목을 담당하는 김 교사(35)는 학교 근처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 그는 지난달 미국에서 2주간 꿀맛 같은 휴가를 보내고 집에 돌아왔는데 뜻하지 않은 봉변을 당했다.

공항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전기료 몇 푼을 아끼기 위해 무심코 두꺼비집 차단기를 내린 게 화근이었다.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는데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차’ 싶어 냉장고로 달려가 냉동실 문을 열었다. 휴가를 가기 전 대형마트에서 사 놓았던 간고등어 팩 20개가 크게 부풀어올라 있었다. 포장 속에는 어떻게 들어갔는지 구더기가 꿈틀거렸다. 김 과장은 “평소 혼자 사는 자유를 만끽하다가도 이런 대형사고가 날 때면 왠지 모를 서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 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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