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윤의 데스크 시각] 세계경제 '초저금리 중독증'
미국 중앙은행(Fed)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뒤 통화량을 네 배 이상으로 늘렸다.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터지기 직전 8476억달러(2008년 8월)였던 미국 본원통화량이 올해 7월 3조9611억달러로 늘었다. 본원통화는 시중에 유통되는 돈과 은행에 맡겨둔 돈을 합친 것이다.

이 돈의 대부분은 금융시장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서 맴돌고 있다. 경기 침체와 저물가 탓이다. 하지만 경기가 좋아지기 시작하고 물가가 상승하는 쪽으로 바뀌면 얘기가 달라진다. 심각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그 전에 정책금리를 조금이라도 올려놓자는 게 ‘9월 금리 인상론’의 배경이다.

세계 경제는 이런 미국의 금리 인상설에 ‘발작’을 일으켰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주 한때 3000선이 깨졌다. 미국 다우존스지수도 이틀 연속 500포인트 넘게 떨어졌다. 유럽과 아시아 등에서도 주가가 급락했다.

주식시장이 반등한 것은 중국이 지난 25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고, 미국에서 금리 인상 시기를 연말께로 늦출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 뒤였다.

끝나가는 초저금리 파티

지난주 주가 폭락을 유발한 것도, 이를 진정시킨 것도 ‘금리’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7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세계 경제는 ‘초저금리 중독증’에 걸린 환자처럼 여전히 저금리에 매달리고 있다.

미국은 이자를 전혀 받지 않고 은행에 돈을 공급하는 ‘제로금리 정책’을 지난 7년간 펴왔다. 시중에 유통되는 채권을 중앙은행이 직접 사들이는 ‘양적 완화 정책’도 썼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조치였다.

덕분에 세계 각국은 넘쳐나는 달러를 즐겼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국 주식시장이 가파르게 회복했고 원자재값도 올랐다. 원자재 수출 비중이 높은 브라질 등 신흥국들도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미국이 넘쳐나는 달러를 흡수할 때가 됐다고 말하자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원자재값이 폭락했다. 신흥국에서 달러가 빠져나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게 ‘미국 금리 인상발(發) 긴축 발작’이다.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면 통증이 가라앉지만 돈을 회수하려는 순간 고통이 극심해지는 병이다.

경제 생산성 높여야

미국 경기가 최근 좋아진 것이 ‘초저금리 덕분’인지는 따져 봐야 한다. 미국의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3.7%(연율 기준)였다. 초저금리가 부추긴 집값 회복이 개인소비 증가(지난 2분기 3.1%)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은 셰일오일 개발이 촉발한 저유가로 가계 소비여력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저금리 정책을 펴온 일본의 기업들이 최근 살아나고 있는 것은 엔저(低)와 기술혁신 덕분이다. 기업의 생산성과 수익성이 좋아지면서 설비투자와 고용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올해 들어서만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두 차례 내렸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2009년 연 2.0%)보다 낮은 연 1.5%다. 하지만 기업 투자나 고용, 수출은 여전히 부진하다. 기업들이 ‘저금리 자극’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기업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현승윤 편집국 부국장 hyunsy@hankyung.com